매일일보 = 이설아 기자 | 정치권은 소수자들, 특히 성소수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법과 제도 마련에 대해 항상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댔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동성애자들의 사생활도 인정받고 인권도 보장돼야 한다는 데 공감"이라고 발언했고,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중요한 것은 동성애자를 하나의 신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 정당들은 약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동성애를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17일 대법원은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파급효과를 예의 주시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법률의 한계가 존재해 엄연히 '국민'인 성소수자들이 마땅한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보완 입법을 하지 못한 자신들을 반성하기는커녕 '예의 주시'라는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암울한 것은 제1당인 민주당도 보수정당들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현행 법률에 기반해서도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는 함의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입법부와 행정부는 종교계의 반발 만을 의식했다. 당장의 선거와 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률상 불가능하다'고 회피했다. 그렇다면 입법을 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예의 '사회적 합의'를 핑계 삼았다.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실제로 어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는 사이 수십년이 지연됐고,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차별과 무관심에 시달려 스러졌다. 정치권은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 주체다. 만약 국민들의 법 감정이 따라오지 않았다면, 스스로 공론화를 하고 조사와 연구를 통해 설득할 책임이 존재한다. 본인들의 의무를 방기하고 논의의 장 구성마저 번번히 미루면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스스로 그런 말을 하면서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더는 '사회적 합의'라는 거짓말을 끝내야 한다. 성소수자 문제 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임신중단권과 모병제 도입 등 정치권이 무책임하게 현안을 방치해 해결되지 못하는 사안들이 너무나 많다. 항상 정쟁보다는 '정책 노선 경쟁'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진짜 '정책'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하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에서 진짜 '정치'가 이뤄지길 소망한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