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정원장 사법부 재판 단골손님으로 등극
역대 국가정보원 원장(국정원장)들이 예외 없이 수난을 당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사건과 관련해 결국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 구속 수감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5일 국정원장 재직시절 불법 감청 등을 지시한 혐의로 임동원;신건전 국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이들이 범죄자로 전락한 셈이다. 이 두 전직 원장들의 구속행으로 말미암아 역대 국정원장들은 사법부 재판의 단골손님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지난 15일 검찰은 임동원, 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을 국정원 도청 사건과 관련 구속 수감했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과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이들의 혐의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구속하게 됐다고 밝혔다. 두 국정원장은 현재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도 불구, 검찰이 밝힌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 실태는 한마디로 ‘충격’이다. 국정원은 1천800여명에 달하는 국내 주요 인사들을 상시 도청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불법 감청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악용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도청의 집중 표적이 됐으며 대통령 친인척은 물론 국회의원 후보들도 주요 도청 대상에 포함됐다. 앞으로 검찰은 구속된 두 전직 국정원장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이들의 구체적인 혐의를 입증할 방침이다. 또한 이들이 불법으로 수집한 도청 정보가 정치권 등의 외부로 유출됐는지의 여부도 수사할 예정이다. 역대 정보기관 수장 ‘수난'
이번 임동원, 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은 역대 정보기관 수장의 수난사를 또 한번 입증 한 셈이다. 사실 역대 정보기관 수장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하다. 정보기관장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은 3김(金) 시대로 한 시절을 풍미했고, 전두환 10대 중앙정보 부장 서리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권력의 맛을 본 경우보다는 과거 정권의 부정부패에 연루돼 불편한 말로를 보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비극적인 인물로 꼽히는 사람은 김형욱. 박정희 정권에서 중정부장을 지낸 김형욱(4대;1963년 7월~1969년 10월)은 5.16 군사 쿠테타의 주역으로 박정희의 신임을 얻으며 중정부장을 지내게 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뒤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그의 인생을 꼬이기 시작한다.김형욱 의문의 죽음 당해
김형욱이 미 의회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이 화근이 된 것. 김형욱은 미국에서 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증언과 회고록을 집필해 유신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김형욱의 이 같은 행보는 박 전 대통령에게 단연 눈엣 가시. 결국 유신정권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던 김형욱은 지난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이후 1990년 3월 서울 가정법원가사심판 1부는 그에 대해 실종을 신고, 김형욱은 법률상 실종된 지 5년이 지난 1984년 10월 7일자로 사망한 것으로 판결이 내려진 상태다. 이후락 (6대;1970년 12월~1973년 12월)도 비참한 말로를 보내고 있는 인물. 이후락은 재임 기간 정부;2인자로 군림했지만 대통령 신임을 잃은 후 영국령 바하마로 망명길에 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봉자였던 그는 공작정치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지만 지난 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말미암아 중앙정부 부장에서 해임됐다. 8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재규 (8대;1976년 12월~1979년 10월)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례. 10.26 사건의 주범인 김재규는 지난 79년 고향 선배이자 육사 동기인 박 전 대통령을 권총으로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지난 80년 5월 서울 구치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도 정보기관장의 최후는 비참했다.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로 개명했지만 중정의 그늘이 여전히 짙었다.안기부도 유혹 뿌리치지 못해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 12, 5 18 사건에 칼날을 들이 되면서 이들 정보기관장들의 수난이 가시화 됐다. 정보기관 재직 기간 이전 혹은 이후의 일이긴 했지만 전두환(10 대;1980년 4~7월)전 대통령을 포함해 유학성(11대;1980년 7월~1980년 12월), 장세동(13대;1985년 2월~1987년 5월), 안무혁(14대;198 7년 5월~1988년 5월), 이현우(19대;1992년 10월~1993년 2월) 등이 군사반란과 비자금 조성;관리 등의 혐의로 줄줄이 기소됐다.문민정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안기부는 한동안 정치개입을 근절한 듯 했으나 안기부장들의 비리는 여전했다. 문민정부의 초대 안기부장인 김덕(20대;1993년 2월~1994 년 12월)은 퇴임 이후에도 통일부총리로 승승장구 했지만 안기부장 재직 시절 지방선거 연기 공작을 추진한 사실이 드러나 부총리에서 낙마, 지난 95년 2월을 이후로 정치권에서 손을 땠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던 권영해(21대;1994년 12월~1998년 3월)는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총풍, 북풍 등 각종 공안사건 조작과 안기부의 공기업을 통한 대선자금 불법모금사건 등에 연루돼 4차례나 검찰에 기소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권영해는 특히 지난 98년 3월 북풍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다가 서울지검 특별조사실 화장실에서 면도칼로 할복을 기도, 자해 소동을 벌이며 비참한 말로를 여실히 보여줬다. 국민의 정부인 김대중 정부는 정권 출범과 동시에 국가정보기관의 환골탈태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관행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국정원 변화 절실히 필요
국민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22대;1999년 1월~1999년 5월)은 국민회의 부총재 재직 시절 언론장악 시나리오 문건 유출 파문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천용택(23대;1999년 5월~1999년 12월)은 취임 7개월 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관련한 부적절한 언급으로 원장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은 국정원 불법감청 사건과 관련해 최근 검찰 조사를 받았고, 천용택은 특히 미림팀의 도청테이프와 녹취록을 보관; 활용하는 등 X파일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로 지목되면서 앞으로의 수난이 예고되고 있다. 천 전 원장의 뒤를 이었던 임동원 전 원장도 대북 송금 특검으로 인해 불구속 기소를 당하는 우여 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최근 세종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활동을 재개하던 임 전 원장은 신건 전 원장과 함께 국정원 도청의 핵심 인물로 거론,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결국 지난 15일 임동원(24대 1999년 12월~2001년 3월), 신건(2 5대 2001년 3월~2003년 4월)전 국정원장은 유선전화 및 디지털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개발, 도청에 활용하고 정치사찰까지 벌인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처럼 역대 국정원장들의 너나 할 것 없이 비참한 말로를 보내는 것에 대해 국정원 안팎에서는 국정원에 변화의 바람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심층취재 실시간 뉴스 매일일보/ www.sisaseou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