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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현대 정치사를 설명할 때는 다양한 ‘시대구분’ 기준을 사용한다. 보통 헌법 개정이나 집권 대통령의 이름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그 시대 정치 흐름을 장악했던 인물과 세력을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가장 대중적으로 회자된 시대명은 87년 대선부터 김대중정부까지를 일컫는 ‘3김 시대’이다. 군사쿠데타 세력의 마지막 열차이면서 ‘보통사람’을 표방했던 노태우를 필두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까지 4명의 ‘지역 맹주’가 돌아가면서 대한민국 정치를 주물렀던 시대이다.3김 시대 이후는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숲 속에서는 숲이 잘 보이지 않는 원리 때문인지 3김 시대 이후를 주도한 인물과 세력이 누구인지 최근까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이제 숲 밖으로 거의 나오고 보니 그 숲에는 ‘박근혜 시대’라는 명명이 가장 걸맞아 보인다.‘정치인 박근혜’의 정계 입문 시기를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서 ‘영부인 대행’ 임무를 했던 때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입당한 이후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그의 정계 등장 이후 치러진 역대 선거 결과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다. 국가부도사태가 와도, 탄핵 역풍이 불어도, 주가조작 책임자로 의심받는 사람이 후보로 나와도, 세월호 참사가 터져도, 메르스 방역에 실패해도 적지 않은 국민들은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살려줬다.아무리 이슈와 구도가 새누리 세력에 불리할 때도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3김 시대의 잔재’와 지역구도, 기울어진 운동장 등의 말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이런 결과들의 중심 혹은 곁에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가 있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박근혜 바람 혹은 박근혜 마법은 변수가 아닌 법칙이었다. 이번 4·13총선 전까지는 말이다.이번 총선 결과를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던 만큼 사후 해석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 하나는 이제 ‘박근혜 마법’이 풀렸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집권기간은 여전히 2년 가까이 남았지만 ‘박근혜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이제 시선은 박근혜 시대 이후로 옮겨간다. 이번 총선 결과로 모든 대권 주자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해석은 다가올 다음 시대가 특정 지도자에 의한 카리스마적 리더십 시대는 아닐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총선 결과가 더욱 절묘해 보이는 것은 각 정당의 의석 배분이 합의와 타협을 통해서만 법안과 정책을 처리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에서 ‘식물국회’를 만든 원흉이라면서 다음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뜯어고치려고 했던 ‘국회선진화법’이 애초 입법의도에 담았던 말 그대로 ‘선진국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구조적 토대가 만들어진 셈이다. 저물어가고 있는 박근혜시대와 함께 이제 대한민국 정치에서 카리스마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 오는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하는 20대 국회에서는 대화와 타협이 샘솟는 선진국회 선진정치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기대가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