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의 역사
제주해녀는 조선시대에는 잠녀(潛女) 또는 잠수(潛嫂)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제주해녀는 국내분만 아니라 해외로도 진출했다는 기록이 '제주풍토기'에 남아있다.이러한 활약상으로 '조선의 중대한 산업 현상'으로 조명되기도 했다.제주해녀의 물옷
해녀들은 바다에서 물질 할때 작업하기 편한 옷을 입는다. 전통적인 해녀옷은 '물소중이<위 사진 참조>로 옆트임이 있어 벗기 편하고 품 조절이 용이 했다. 1960년대 이후 소중이 위에 저고리형태인 '물적삼'을 입기도 했다.이후 1970년대 들어서면서 대다수의 해녀들이 '고무옷을 입었는데 기존의 물옷보다 성능이 뛰어나 작업의 효율성을 높여줬다.해녀 공동체
물질작업에서 동료의 물질경험과 지식을 배우는 것은 물질 기량을 높이는데 중요하며 동료해녀는 물속에서 닥칠 위험을 상호 예방하는 보호막 역할도 한다. 이런 역할은 제주해녀문화는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세대간에 전승돼 왔다.해녀들은 물 때에 맞춰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밭일과 집안일을 하며 가사를 꾸려 나갔다. 바다에서는 전복 소라를 캐며 물질의 성취감을 느꼈지만 마을에서는 소박한 아낙네의 삶을 살아갔다.바다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곳
바다는 풍요로운 해산물을 제공해주는 삶의 터전 이었지만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치열한 생존현장 이었다. 때로는 죽음의 위험을 감수 해야 하는 일 이기에 해녀들은 '영등신'과 '용왕신'등 바다의 신들에게 해상의 안전과 해산물의 풍요를 빌었다.유네스코는 제주해녀문화의 공동체적 성격과 자연과 동화하는 특별한 전승문화 그리고 그안에 녹아있는 협동을 통한 인류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이번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게 됐다.우리나라는 이번 등재를 계기로 인류무형유산의 지속가능한 보호와 전승을 위해 국립무형유산원과 제주특별자치도를 비롯 물질을 하고 있는 공동체 모두가 함께 우리유산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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