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기업 태광산업(대표이사 이호진 회장)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기업설명회(IR)를 개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 10일 기업설명회 마련을 위해 전담팀을 꾸리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1961년 ‘태광산업주식회사’로 법인을 설립한 태광산업은 여태껏 단 한번도 기업설명회를 마련한 적이 없어 이번 IR 개최배경을 두고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태광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ㆍ일명 장하성 펀드)가 입김을 불어넣은 것 아니겠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지만, 태광산업 측은 “일반 주주와 기관투자자들에게 회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마련한 자리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창사 이래 최초 IR 개최 ‘눈길’
태광산업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달 IR팀을 만들어 언론계 출신 임원을 팀장으로 선임하고 다른 상장기업들의 IR행사에 참관하는 등 기업설명회 개최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IR을 통해 자신들의 경영내용과 미래 전망에 대한 정보를 투자가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의 경우 주가관리 등을 위해 정기적인 IR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그러나 태광산업은 자산규모 1조6천156억원을 보유하고 국내 재계순위 158위에 올라있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단 한번도 자신들의 경영내용을 주주들에게 공식 설명한바 없어 이번 IR 준비에 대한 환영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와 함께 ‘왜 갑자기 IR을 마련하기로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현재 업계에서는 태광산업의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장하성 펀드의 위력’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태광산업은 지난 2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장하성 펀드의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한바 있다. 장 펀드 측은 태광산업에 ‘주주 중시 경영’을 강조하면서 장 펀드 측이 추천한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것과, 감사위원회 신설 및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태광산업 계열인 대한화섬 역시 주주총회를 통해 장 펀드 측이 추천한 김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캐치프라이즈에 걸맞게, 장하성 펀드가 태광산업의 경영구조 전반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장하성 펀드, 태광 경영구조 전면 개입하나이처럼 태광산업이 장하성 펀드의 요구안을 적극 수용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8월 발생한 장 펀드-태광산업 간의 대립에서 찾아볼 수 있다.장 펀드는 지난해 8월23일 48억원을 들여 대한화섬의 지분 5.15%를 취득함과 동시에, 모그룹 태광산업에 대해 오너 이호진 회장의 편취를 지적하며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대한화섬의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를 요청해오기도 했다.그러나 태광산업은 장 펀드 측의 요청을 거부하고 주주입증 서류제출을 요구했으며, 결국 같은 해 9월28일 장 펀드가 대한화섬을 상대로 법원에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내며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장 펀드는 또 이호진 회장이 태광산업 소유였던 천안방송의 지분 67%를 편법으로 헐값 인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10월19일 태광산업 이사회에 이 회장이 소유한 티브로드 천안방송 지분 반환을 위한 개입권 행사를 요청했다.장 펀드 측에 따르면 이 회장 부자는 자신들 소유의 전주방송을 이용해 천안방송의 지분을 헐값에 인수했으며, 이 과정에서 태광산업이 보유해야할 1천억원 가량의 자산을 부당하게 편취했다.결국 법원은 11월3일 장 펀드의 대한화섬 주주명부 열람을 허용하며 장 펀드의 손을 들었고, 한 달 뒤인 12월14일 장 펀드와 태광산업은 4개월에 걸친 대립을 끝내고 태광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합의했다.당시 장 펀드의 고문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총수 부자가 보유한 천안방송의 지분을 다시 태광산업으로 이전할 것 △유선방송 계열사를 묶는 지주회사를 설립해 소유구조 투명화를 실현할 것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제도를 강화할 것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이로써 태광산업은 실질적으로 장 펀드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태광산업이 창사 이후 46년 만에 처음 기업설명회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업계가 ‘장펀드의 위력’을 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평가다.이에 대해 태광그룹 측은 여전히 “장하성 펀드가 요구한 내용들은 이미 회사에서 진행하거나 계획하고 있던 것들”이라며 “굳이 장 펀드를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장 펀드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태광산업 측에서 지배구조 공개를 위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열릴 기업설명회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