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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를 따질지언정 한 개인에 대한 모독은 안 된다. 고 김종필 전 총리 훈장 추서 논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김 전 총리가 별세한 당일 이낙연 총리는 빈소를 찾아 조문한 자리에서 김 전 총리에게 훈장 추서 방침을 밝혔다. 이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 총리 대 기자로서 김 전 총리를 만난 일들을 떠올리며 “뵐 때마다 풍모나, 멋이나, 식견에 늘 압도되곤 했다”고 했다. 또 “얘기를 나눌수록 후대에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거인이시라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고도 했다. 물론 이 같은 개인적 평가 때문에 훈장 추서를 결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총리는 “한국 현대사의 오랜 주역이셨고, 전임 총리이셨기에 공적을 기려 정부로서 소홀함 없이 모실 것”이라고 했다.그러나 모두가 이 총리와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진보진영의 민중당은 고인에 대해 “박정희와 함께 4·19 혁명을 쿠데타로 짓밟은 역사의 범죄자,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반공주의와 독재 공포정치로 민주주의를 질식시킨 자, 일본의 과거 범죄에 대해 면죄부를 준 굴욕적 한일협정의 당사자”라며 “독재 권력에 부역하며 역사 발전을 발목 잡은 인물에게 훈장 수여는 가당치 않다. 정부는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훈장 추서 방침을 철회하라”고 했다. 한마디로 “역사의 죄인에게 훈장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김 전 총리가 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가 있기는 하지만 군사쿠데타의 실질적 주도자이자 90년대 지역주의라는 망국병에 기대 정치판을 쥐락펴락한 것도 사실이다. 누구에게는 ‘역사의 죄인’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한 인간에 대한 모독은 안 된다.민중당은 “그가 남긴 과오를 보면 자연인 김종필의 죽음조차 애도하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SNS 상에서는 그 이상의 악담이 오간다. 한 페이스부커는 “우리는 김종필 씨에게 훈장을 줄 생각이 없다. 우리 손에 들린 훈장을 빼앗아 파렴치한에게 바치지 마라. 그런 비열한 구시대의 잔당들에게 국민은 아무 관심도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페이스부커는 지난 대선 당시 김 전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하한 말을 다시 거론하며 “김종필의 몽니는 죽어서까지 이어진다”고 조롱했다. 김 전 총리는 지난해 홍준표 후보가 찾아오자 “문재인 같은 얼굴이 대통령이 될 수가 없는데 세상이 우스워졌다”고 했다.이 정도면 정치인에 대한 공과론을 넘어서 한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역사적 평가와 고인에 대한 예우를 구별하지도 못하는 말들이다. 김 전 총리는 정치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비열하고 잔인한 싸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스스로 멋과 여유로 그것을 경계했다. 그런 사람이라면 비판을 가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비판을 해야 하지 않겠나. 훈장 추서 논란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특별히 논란할 사안은 아니다. 일생 한국사회에 남기신 족적에 명암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깊이 생각해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