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근형 기자]통신 시장이 중대한 고비에 섰다. ICT(정보통신기술)의 큰 흐름이 변곡점에 있기 때문이다. 4세대 이동통신인 LTE(롱텀에볼루션) 시대에서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로 막 전환하려는 순간이다.5G는 이전 세대의 통신인 LTE에서 상실한 ICT(정보통신기술)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절회의 기회다. 여기에 더해 5G는 자율주행과 VR(가상현실),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서비스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가 경제의 명운이 걸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내년 상반기 세계 최초로 전국 단위의 5G망을 구축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를 뒷받침하고 선도에서 이끌어야 할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도전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통신 3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목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상반기 5G 주파수를 할당받은 이후 차곡차곡 준비해가고 있다.하지만 통신3사의 5G를 향한 도전은 첫걸음부터 순탄하지 않다. 5G 통신네트워크 구축의 시작인 장비 업체 선정에서 벽을 만났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장비는 5G망의 안정적인 구축을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값싸면서도 성능 좋은 장비를 구매하겠다는데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산 장비의 도입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이 대표적이다. 화웨이는 세계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선두 기업이다. 기술력에서도 한국은 물론 유럽 업체들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앞선다는 평가도 있다. 가격도 경쟁사보다 저렴하다. 모두 국산 장비를 써서 구축할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냉정하게 보면 지난 20여년간 한국 네트워크 산업은 절름발이가 됐다.
결국 외산 장비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벌어지는 화웨이 장비 배제 움직임은 소탐대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화웨이 장비가 보안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맞다. 논란은논란일 뿐 통신보안을 침해한다는 것이 명확히 입장된 바도 없다. 이 부분은 다른 외산 장비도 자유롭지 않다. 통신 장비의 보안 논란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온 문제다. 중국산 장비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논란이 커지면서 SK텔레콤은 지난달 중국산 장비를 제외한 채 장비공급 사업자를 선정했다. KT는 경쟁력 있는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저하면서 사업자 선정을 미루고 있다. 4G LTE망을 구축하면서 이미 화웨이 장비의 경쟁력을 확인한 LG유플러스 역시 5G에서 화웨이 장비를 선택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여론과 정부의 시선이 따갑기 때문이다.5G는 장비 구축과 서비스 개시로 끝나지 않는다. 서비스 구축에 각 사에서 수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여기에 다시 5G 고속도로에서 달릴 콘텐츠 확보를 위해 또 다시 수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장비 구축에서 수천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면 5G 콘텐츠에 투자할 여력이 그만큼 더 생긴다. 5G 시대의 ‘진정한’ 경쟁에서 한 걸음 앞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여론과 정부가 박탈했을 수도 있다.5G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 SK텔레콤은 화웨이를 제외했지만 여전히 어깨가 무겁다. 화웨이는 계열사인 SK하이닉스의 주요 반도체 고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로 금한령을 내려 한국 콘텐츠산업이 위기에 빠진 일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한국은 중국에 반도체와 화학제품 등 중간재를 수출하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문제가 또 다른 통상 마찰로 이어질 경우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못지않은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기업이 경쟁력 있는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게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책임지지 않을 사람들은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낫다. 기업이라는 생물체는 태생부터 스스로 최선의 방법을 찾도록 설계돼 있다.
5G는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이다. 성장동력을 잃은 대한민국호에게 남은 어쩌면 유일한 기회일지 모른다. 그 첫걸음부터 잡음이 들리니 안타깝다. 시작이 좋아야 결말도 좋다. 지금이라도 기업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ICT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되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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