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남호씨 ‘직함도, 업무도 없지만 지분 통해 이미 그룹 접수’
동부CNI와 동부화재 통해 제조·금융계열사 장악
동부 “남호씨 향후 1~2년간 경영참여 계획 없어”
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도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재벌 후계자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장남 김남호(32)씨가 그 주인공. 그룹 내에서 어떤 직함도 없고, 맡고 있는 업무도 없지만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확보해 이미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보유 중이던 동부CNI 주식 903만470주 가운데 274만2000주를 남호씨에게 증여했다. 이번 증여로 남호씨는 동부CNI의 지분율이 5.68%에서 16.68%로 높아지며 12.25%인 김 회장을 제치고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남호씨는 이미 2002년 그룹 내 핵심 금융계열사인 동부화재 지분 14.06%를 보유,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금융 및 건설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한 상태다. 이어 동부CNI 지분까지 추가로 얻게 되면서 그룹 지배력을 더욱 높이게 됐다. 재계에서는 핵심계열사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남호씨가 언제쯤 경영권을 이어받을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호씨가 이번에 최대주주로 올라선 동부CNI는 지난 3월 그룹 내 IT솔루션을 맡던 동부정보기술이 (주)동부의 컨설팅 부분을 흡수 합병해 설립한 회사로, 그룹 계열사에 대한 컨설팅을 맡고 있는 업체다. 동부 측 관계자는 “이번 동부CNI 지분 증여는 이전부터 진행돼 온 지분 승계 작업의 연장선상”이라고 밝혔지만 그보다는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이 회사는 동부정밀화학의 지분 21.58%를 확보하고 있고, 동부정밀화학은 다시 그룹 핵심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동부제강 지분 14.7%를 가지고 있다. 또 동부제강은 동부하이텍의 지분 16.60%를 가진 2대주주이기도 하다. 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의 지분 21.14%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남호씨는 동부CNI를 통해 화학 및 제조부분 핵심계열사에서 확고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그런가하면 지난 2002년에는 그룹 캐시카우(현금창출) 역할을 하는 금융계열사 동부화재를 통해 이미 건설과 금융계열사의 지배력 또한 확보한 바 있다. 남호씨는 동부화재 지분 14.06%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동부화재가 동부건설 13.73%, 동부증권 10.12%, 동부생명 31.29%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지분 정리 끝났는데, 경영 참여 안하는 이유는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동부CNI 지분 이동을 통해 김 회장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지분 정리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남호씨가 그룹 경영에 뛰어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외아들인 남호씨는 사실상 동부그룹의 유일한 후계자로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이 당연시 여겨져 왔던 터라, 김 회장의 사전 작업이 끝나면서 남호씨가 경영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그러나 동부 측에서는 여전히 남호씨가 당분간 경영 일선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남호씨는 미국 웨스트민스터대를 졸업한 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워싱턴 주립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2002년 잠깐 컨설팅업체인 AT컴퍼니에서 근무 했을 뿐 동부그룹 경영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동부 관계자는 “본인이 공부를 계속하기를 원하고 있고, 김 회장 역시 아직은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향후 1~2년 안에 회사에 들어와 경영수업을 받거나 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해 후계수업을 받는 것도 아니고,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는데 꾸준한 사전상속을 통해 32살의 나이에 이미 그룹을 접수한 남호씨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동부 관계자는 “미성년 자식들에게도 편법을 써가면서까지 지분을 물려주는 곳이 있는 데 김 회장 일가의 경우는 낼 것(증여세) 다 내고 증여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기업들의 승계 작업이 점차 빨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 김 회장 나이가 60대 초반으로 젊은 편이고 남호씨 본인 또한 경영 참여 의사가 없기 때문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 입사 논의조차 된 바 없다”고 못 박았다.권민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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