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북미 비핵화 담판이 결렬된 뒤 그 충격파가 가시기도 전에 한반도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뒤덮였다. 기온은 오른듯한데 2월말·3월초의 봄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춘래불사춘’(胡地無花卉 春來不似春의 줄임말,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의미)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의미에서 조윤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본다. 조윤진 작가는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어서와 봄’이라는 기획전에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남북미 세 정상의 초상화를 출품, 화제가 된 바 있다. 그의 초상화는 조금 특별해서다.조윤진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이 아닌 ‘박스 테이프’를 조각내거나 겹겹이 붙여 완성하는 작업을 해왔다.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누구나 쉽게 소비하는 박스 테이프를 작업의 소재로 활용한 재료를 접근한 방식이 단연 돋보이는데, 형형색색 테이프 면의 중첩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독창적 표현 기법 또한 관람객의 시선을 한 번 더 머물게 한다.그는 이런 방식으로 영화 속이나 역사 속 혹은 현대의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인물들을 작업한다. 피카소, 프리다 칼로, 제프 쿤스, 마릴린 먼로, 오드리 햅번, 퀸,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에이미 와인하우스, 신해철 등 실제 인물부터 아이언맨, 원더우먼 등의 영화 속 히어로즈까지. 주변에 흔한 테이프로 다시 태어난 인물들은 관객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로 다가온다. 남북미 정상들을 테이프로 재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조윤진 작가는 “테이프란 물질문명의 산물로서 쉽게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기 힘들다. 테이프는 무엇인가를 붙여서 치료하기도 하며 강제로 움직이게 묶어버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테이프란 사물이 찢기거나 온전하지 않을 때에만 효용가치가 있는 물질이다. 나는 우리 삶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테이프를 작업의 재료로 선택했고, 테이프라는 소재로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들을 주로 작업한다. 동시대 혹은 이전의 시대에 존재하고, 존재했던, 가깝고도 먼 유명인을 미술 재료로서 최소의 비용인 테이프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들과 관객에게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함이다”(작가노트)라고 설명한다.지금은 춘래불사춘의 시절이지만 언젠가 진정한 한반도의 봄이 오는 날 그의 작품을 다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