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 필요하세요? 부동산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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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전 필요하세요? 부동산으로 오세요”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05.02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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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 찍는 강남 부동산∙중고명품점, 강남 유흥업소 아가씨들 노린 ‘변종 대부업’ 기승

일수 부동산, 보증금 대출해준 뒤 연이율 80.3% 고리 받아내
중고명품대출, 유흥업소 많은 강남권에만 있는 신종 불법대출
신용등급 낮은 ‘나가요걸’ 타겟, 돈 갚지 못해 성매매 나서기도

[매일일보닷컴] 서울 강남의 일부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이제 ‘땅 팔아서 돈 번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사람들이 보통 부동산을 찾는 이유는 집이나 땅을 사고팔기 위해서다. 그러나 요즘에는 돈이 급한 사람들도 이곳 부동산들을 찾는다. 특히 강남지역의 일부 부동산들이 그렇다.

이외에도 강남에는 지역 특수성을 띤 대부업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명품대출’이 그것이다. 강남의 중고명품점에는 명품을 담보로 연 48~60%의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는 ‘변종 대부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매일일보>에서 그 실체를 들여다봤다.

서울 압구정동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황모씨(28 ∙여)는 지난 1월 전세 보증금이 모자라자 1,000만원을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대출받았다. 부동산업자가 자신의 명의로 전세집 주인과 임대차계약서를 대신 작성하고 황씨는 업자에게 매일 원금과 이자를 갚는다는 조건이다. 부동산 일수방에서 얻은 대출금의 연이율은 수수료를 포함해 80.3%로 황씨는 100일 동안 하루 12만원씩 총 1,200만원을 갚아야 했다.

이곳에서는 부동산중개업소의 일도 처리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속칭 ‘일수방’ 형식을 취한 변종 부동산이었던 것. 이는 신용등급이 낮아 목돈을 얻는 게 쉽지 않은 ‘강남 아가씨’들을 노린 신종 불법대출 형태다. 청담동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정모씨(24∙여)는 자신이 사용하던 명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 그 돈으로 명품을 사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다. 강남의 수많은 업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 손님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있어 보이기’ 위해서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아야하는 직업특성상, 밥은 굶어도 명품을 사 모으는 데는 열을 올려왔던 그녀. 때문에 현재 가진 돈은 없어도 가진 명품은 많았다. 그런 그녀에게 솔깃한 정보가 들어왔으니, 바로 인터넷에서 ‘명품담보대출’이라는 광고를 본 것. 명품브랜드의 신상품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정씨는 갖고 있던 핸드백, 구두 등의 명품을 담보로 중고명품점에서 대출을 받았다.

대출 조건은 월이자 5%를 적용해 3개월간 원금·이자를 모두 갚는 방식으로, 연리 60%의 고금리 상품이다. 대출금은 하루 이틀만 걸러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강남구 일대의 이 같은 불법 대부업 행태는 경찰의 기획수사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법정이자율 넘는 80%대 고리 받아

▲ 기사내용과 사진 속 특정 상품과는 관계없음.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28일 강남일대에서 부동산업소나 중고명품점을 운영하며 유흥업소 여종업원을 상대로 무허가 대출을 한 홍모씨(32) 등 부동산중개업자 45명과 중고명품가게 업주 22명 등 모두 67명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강남 일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20~30대 여성들에게 법정 이자율 한도인 49%를 넘는 최고 80%대 고리채를 받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중고명품대출을 해온 홍씨 등 20여 명은 2007년 초부터 최근까지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명품 담보대출’이라는 광고를 내고, 이를 보고 찾아 온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에게 명품 감정가의 60~70% 정도 되는 금액을 월 4~5%, 연 48~60%의 이자를 받고 대출한 혐의다. 이들이 담보로 받은 명품은 프라다·루이비통·구찌·롤렉스 등 다양했다. 정씨(43) 등 부동산 중개업자 40여명은 지난 2000년부터 보증금이 부족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에게 불법대출을 해주고 수수료를 포함해 80% 가량의 이자를 받아낸 혐의다.경찰조사에 따르면 이들 부동산업자들은 대출자 명의로 계약을 했을 경우, 부동산 계약서나 집문서를 담보로 잡았다. 물론 차용증도 쓰고 일수 장부에 갚을 원금과 이자, 연락처 등을 적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중고 명품이나 부동산 일수방 대출은 유흥업소가 많은 강남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불법대출 형태”라며 “‘품위 유지’를 위해 명품으로 치장하지만 돈이 필요할 때 급전을 사용하는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이 많다는 걸 알고 주로 그들을 대상으로 불법 대출을 해왔다”고 말했다.이번 경찰조사에서도 드러난 사실은 중고명품 대출점이나 일수부동산을 찾는 주 고객은 유흥업소에서 손님에게 1차 술 시중을 들고 2차까지 서비스하는 속칭 ‘나가요 걸’들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중고명품점에서 담보 대출을 이용한 여종업원의 기록만 500여명에 달했다는 것.이 관계자는 이어 “일부 여성들은 돈을 갚지 못해 다른 사채를 빌려 쓰거나 성매매에 나서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거래 줄어들자 ‘돈놀이’로 불법 영업

이런 곳들은 유흥업소 등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번화가에 가면 찾아 볼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부동산 중개업소 간판 옆에 ‘일수방’이라고 노골적으로 표시해 놓은 곳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중고명품점이나 부동산중개업소들이 이렇게까지 변질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경기가 어려워 생존차원에서 ‘대안’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경찰에 적발된 부동산업자 중 한 명은 “매매보다 전세·월세 방이나 오피스텔을 알선하면서 자연스럽게 돈놀이를 하게 됐다”면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서울에만 수백 군데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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