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에서 9월 사이에 발생한 이번 사태로 저수지에 고인 물을 방류할 수도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저수지에 기대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해당 지역을 맡고 있는 감독관청과 지자체에서는 저수지 오염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해결에 적극 나서기보다 폐기물업체에 대한 ‘편의 봐주기’에 힘쓰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이에 지역주민들의 문제제기로 검찰 수사까지 시작됐다.
오염된 물 쓰지도 흘려버리지도 못하는 ‘죽음의 저수지’로 전락
준설 통한 근본 해결 관련 구체적 계획 없이 예산 지원만 기다려?
폐석면·의료폐기물 등 고위험물 취급하는 케이엠그린 구미매립장
시설 관리 미비 책임 불구 추가 오염만 막고 재사용 ‘특혜’ 논란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본점을 두고 있는 폐기물 전문업체 주식회사 케이엠그린(KM그린 혹은 KMGREEN으로도 표기)은 2001년 7월 경북 구미시 산동면 백현리 산192-10번지에 위치한 매립장 부지를 매입하고 법인을 설립하면서 출범했다.
‘폐기물의 최종처리업, 중간처리업, 수집운반업’ 등을 주요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는 이 회사가 다루는 폐기물은 사업장 일반폐기물, 사업장 지정폐기물, 폐석면 매립대상 폐기물, 의료폐기물(소각) 등 고위험 폐기물이다.
케이엠그린의 구미매립장이 들어서 있는 옆에는 1945년에 준공돼 백현리 주민들이 대대로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는 안전한 저수지였던 ‘웅현저수지’가 자리잡고 있다.
고위험 폐기물 매립 시설이 농업용 저수지 옆에 그것도 저수지보다 높은 곳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인근 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였을리는 만무한 일. 그러나 허가권을 가진 이들에게 매립장을 둘러싸고 있는 산동면 백현리·송산리 주민들과 군위군 소보면 주민들의 반대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것 같다.
2005년 매립장 공사가 완료되고 시설 사용허가까지 나오면서 주민들은 머리 위에 ‘시한폭탄’을 이고 사는 것처럼 불안에 떠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머리 위 시한폭탄’이 실제 ‘폭발’이라는 현실로 나타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7월 중순, 물고기 집단폐사가 있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구미시청 등 관계기관에 물고기 집단폐사 사실을 알리면서 진상 파악에 나서라고 요구했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에 의해 폐사한 물고기들이 치워지는 일이 벌어졌고, 조사를 나온 감독관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검사결과를 내놓았다.
두 달여 뒤인 그해 9월 저수지 물이 새까맣게 변하면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다시 실시된 검사에서 오염물질 유출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케이엠그린에 대해 10월4일부터 6개월간의 시설 사용중지 처분이 내려졌으며 오염 해결을 위한 대책 논의가 시작됐다.
안전한 저수지, 매립장 들어서니…
구미시 산동면사무소가 지난해 12월 작성한‘웅현저수지 토질 및 수질 오염에 따른 대책회의’자료에 따르면 그해 7월17일 물고기 폐사 신고를 받고 이틀 뒤 환경위생과와 농정과에서 수질검사를 했을 당시엔 특정수질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다시 두 달이 안 된 9월14일부터 저수지 물이 까맣게 변색되고 악취가 발생해 9월20일 현장을 다시 답사한 결과 케이엠그린에서 침출수가 유입된 정황이 포착됐다.
실태조사에 들어간 대구지방환경관리청은 9월의 저수지 물 변색과 악취 등 웅현지 오염 원인이 지정폐기물 매립 과정에서 2공구의 차수막 이음새가 파손돼 침출수가 웅현지로 유입된 것에 있음을 밝혀내고, 그해 10월 4일부터 6개월간 사용중지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케이엠그린은 사용중지 기간을 4개월로 줄여 2월부터 재사용에 들어갔다. 사용중지 기간이 단축된 이유는 대구지방환경관리청이 내세운 ‘보완조건’을 케이엠그린 측이 이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완조건은 매립지 외부지역에 ‘연직 차수벽’(땅속에 벽을 세워 오염된 지하수의 이동을 막는 공법) 설치를 완료하고, 보수작업을 실시한 폐기물 처리 시설에 대해서 전문기관에 안전도 검사 및 합격판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즉 저수지나 주변 지하수에 대한 ‘추가 오염’ 발생만 막는 것으로 사실상 오염 유발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었다는 말이다.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현 상태로는 오염된 저수지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저수된 물을 방류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이에 따라 저수지 준설 등의 정비공사 같은 근본적 해결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당연히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대구지방환경관리청 등 관계기관이 케이엠그린의 편의만 봐주고, 준설 무기한 지연 등 주민과의 약속 불이행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는 반발이 불거져 나왔다.
주민들의 반발에 대해 대구지방환경관리청 관계자는 <매일일보>의 취재에 “6개월 중지 같은 경우 원래 1개월 사용중지인데 6개월 중지 명령을 내린 거였다”며, “편의나 특혜를 준 사실도 이유도 없다”는 입장을 강변했다.
대구지방환경관리청 관할이라면서 방관하고 있는 구미시도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구미시마저 미온적으로 대처하자 백현리와 송산리 주민 78명이 지난 3월19일 대구지검 김천지청에 수사의뢰 청원서를 접수했다.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은 주민들의 수사의뢰 청원에 따라 케이엠그린의 환경오염 사고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케이엠그린 구미사업소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주민들의 청원이 들어와서 현재 관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 쪽에 조사 요청이 들어온다면 성실히 조사에 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역시민단체인 구미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구미경실련)에도 도움을 요청했고 구미경실련은 행동에 나섰다.
산동면사무소 자료에 따르면 저수지 오염에 따른 대책으로는 △근본적 오염원 유입 차단을 위해 케이엠그린 진출입 도로 중간 지점의 구거유입수 및 지표유입수 집수 및 정화시설 설치 △현 상태에서 저수된 물의 방류가 불가능하므로 저수된 물의 중간처리 후 준설 등의 사업진행 △2012년도 농업용수 부족에 따른 영농대책으로 농업용 관정 설치 등이 있다.
구미경실련은 “주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여론몰이에 나섰고, 이에 대해 케이엠그린 측은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준설은 관할시의 예산도 떨어져야 하고 여러 가지로 시간이 걸린다”며, “계획이 없다는 얘기는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케이엠그린 관계자는 “준설 부분은 우리도 처리하겠다고 분명히 입장을 전달했다”며, “준설은 관할관청에서 예산과 계획이 나와야 진행할 수 있다. 일정이 잡혀야 시행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계획이 없다는 것은 와전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관할관청의 예산 승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 케이엠그린의 시설관리 미비로 발생한 오염사고에 대한 사후처리가 케이엠그린 자체 비용이 아닌 세금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애꿎은 주민 탓케이엠그린 측은 “우리도 지하수를 이용할 수 있도록 관정 2곳을 따로 설치해 농업용수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면서“주민 대부분이 합의를 했고 준설도 착오없이 진행할 텐데 일부 소수 주민들은 피해보상만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용탑 주민대책위원장은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침출수로 웅현저수지가 오염돼 농사도 짓지 못하고 방류조차 못하는 실정”이라며 “봄에 비라도 오면 오염된 물이 낙동강 상수원을 오염시킬 위험이 높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실제로, 페기물 매립장이 설치된 구미시 산동면 백현리 일원은 낙동강 상수원과 인접해있어 당장 오염된 물을 빼지 않으면 비가 많이 올 경우 인근 농지로의 유입은 물론 상수원 오염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근 주민들의 피해는 당장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을 넘어 이 지역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백용탑 위원장은 “업체가 들어서면서 재산상 피해가 어마어마하다”며 “폐기물 단지가 논 밑에 들어섰으니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농토 거래가 전혀 되지 않아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주민들은 피해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백 위원장은 특히 “현재 주변 150가구 가운데 매립장과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16가구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며 케이엠그린 측에서 주민 대부분이 합의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현재 150가구 가운데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16가구”라며 “다른 가구들은 폐기물 단지와 다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극적일 뿐,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돈으로 갈라세운 민심
이들 16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가구들이 매립장에 대해 그다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매립장이 들어설 당시, 주민들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케이엠그린 측이 사업이 끝날 때까지 향후 30년간 매년 1억씩 마을발전기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케이엠그린 관계자는 “업체 설립 당시 이곳 마을에 마을 발전 협의금으로 이 사업이 끝날 때까지 30년(2030년)간 1년에 1억씩 고정적으로 지원금을 내기로 했고, 이에 주민들 대부분이 합의했다”며, “이 약속은 단 한번 깨진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지원금뿐만 아니라 업체설립 조건으로 그곳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노인들을 상대로 건강검진도 시켜주고 있다”며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입장과 함께 설립과정에 주민들과 합의가 이루어졌음은 물론 주민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했다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케이엠그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백용탑 위원장은 “주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합의된 부분은 없다. 그저 갑갑할 따름”이라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백 위원장은 “업체가 들어설 당시 주민들의 반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노약자들이 절반인 주민들이 이들의 힘에 밀려서 들어서게 된 것”이라며, “업체가 말하는 합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백 위원장은 특히 “우리가 바라는 건 업체에게 결정권이 있는 만큼 대화로 풀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말해 케이엠그린 측이 주민대책위와의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백 위원장은 이어 “봄비라도 오면 당장 저수지물이 넘치게 생겼는데 당장의 대책에 눈감고 있는 상황”이라며 “업체에서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관정은 주민들 입막음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이곳저곳 탄원서 내봤지만
지난 해 12월 백 위원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해당 정부기관과 관계 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해 맑은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와 함께 물적 피해보상을 요구한 바 있다.
탄원서에서 마을 주민들은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지방행정기관과 민간단체에서도 낙동강 맑은 물 살리기 사업을 수시로 전개하고 있다”며 “하류에서는 낙동강, 맑은 물 살리기 운동을 하고 상류를 오염시키는 것은 앞과 뒤가 맞지 않는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구미경실련은 “지정폐기물은 사업장폐기물 중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물질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폐기물”이라며, “현 상태로는 웅현지 물이 농업용수로 부적합할 정도로 오염돼 방류를 금지시켜놓고서도, 최근 봄비로 저수지 물이 곡정천으로 넘쳐흐르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미경실련은 약속 불이행에 눈감고 있는 구미시에 대해서도“지정폐기물 관련 민원에 대해선 그 위험성만큼 더욱 신속하게 대처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으로 주민들의 불신을 야기하고 있다”며 대구지방환경청과 구미시의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