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밤 문재인 대통령이 두 시간에 걸쳐 국민들과 나눈 대화는 조국 사태로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래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차례 조국 씨를 비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의 상식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을 품는 국민들이 많았다. 다행히 이제 문 대통령은 조국 씨에 대한 미련을 떨친 듯하다. 또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느끼는 실망감과 배신감도 충분히 인식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대화의 큰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과의 대화는 문재인 정부의 한계와 본질적 문제를 드러낸 자리이기도 했다. 민원인의 하소연이 난무했고 대통령은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급급했다. 너도나도 자신의 사연을 들어달라고 손을 들어 외치는 모습은 ‘각본 없는 솔직한 대화’를 넘어 ‘감성을 자극하는 중우정치’를 연상시켰다. 특히 지지자 일색의 패널은 간판만 ‘국민과의 대화’였을 뿐 사실상 ‘팬클럽과의 대화’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첫 정모였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결과 국정을 이끄는 대통령의 안이한 현실인식을 바꿀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한 답변은 민생 문제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며 “지금까지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 이유는 역대 정부가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성장률과 관련한 어려움을 겪어도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기간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고 전국적으로는 집값이 하락할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했다. 또 “과거에는 ‘미친 전월세’라고 했는데 우리 정부에선 전월세 가격도 안정돼 있다”고 했다.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은 부동산 가격 폭등의 하나의 원인일 수는 있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의 모든 원인은 아니다. 게다가 부동산은 성장률 하락의 면피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대통령의 발언을 듣자면 과거 정부처럼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했다면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또 대부분의 기간, 그리고 전국적으로 집값이 하락했다는 발언은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발언을 연상시킨다. 강남 부동산을 잡겠다고 정부가 쏟아낸 대책으로 인해 전국 각지의 국민들이 고통 받는 역효과가 났지만, 대통령은 ‘안정화’라고 규정했다. 정작 정부가 잡아야할 서울 집값은 무수한 고강도 대책이 쏟아졌어도 오히려 올랐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가까운데 대통령의 인식은 낙관론을 넘어 ‘근자감’에 가깝다.
이 같은 문제적 인식은 민생과 경제 현실 전반에 걸쳐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부작용이 현실화되자 정부는 사실상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했고, 주52시간 근무제는 사실상 시행을 연기했으며, 문재인 케어의 간판이었던 MRI 건강보험 적용은 현실을 도외시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결론 나고 있다. 이처럼 핵심 개혁정책들이 줄줄이 파탄 나고 있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부가 져야할 엄중한 책임을 국회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