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승익 기자] 최초의 사진기에는 노출계가 없었다. 사진기 자체에서 빛의 명암을 인식하지 못해 사진가가 빛의 노출을 조정해 피사체의 명암을 표현했다. 즉, 사진가가 현상과 인화 과정에서 사진의 표현을 명암으로 달리한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 사진가들은 중요한 노출을 외우고 다녔다. 당시 사진가들의 매뉴얼이라 할 수 있는 ‘써니16’ 규칙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해가 쨍한 날, 조리개를 16에 놓고, 셔터스피드는 지금 카메라에 넣은 필름과 같은 속도로 맞춰서, 직광을 받는 피사체를 찍으면 적정 노출이다” 같은 방식이다. 이렇게 사진가들은 자기만의 노트와 경험으로 좋은 노출을 경험으로 배워갔다. 이후 1930년대에 들어서야 사진기에 자동으로 셔터를 계산해 주는 노출계가 등장했다.
동양의 수묵화에는 오로지 검정색 하나로 농도를 조정해 세상을 표현했다. 수묵화를 감상하다보면 이렇게 농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세상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림자, 형태, 멀고 가까움을 칼라가 없어도 흑색의 짙고 옅음만으로 표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흑백의 농도로 명암을 조정해 세상을 표현하는 것은 결국 회색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레이존(회색지대)’은 어쩌면 우리 삶 가운데 중요한 영역의 출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사회적으로 ‘그레이존’이란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중간지대를 뜻한다. 현대화시대에 접어들어 ‘그레이존’이라는 용어는 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새롭게 사용됐다. 처음에는 1968년 체코사태 이후에도 추방되지 않고 대학과 연구기관에 남아 있는 역사학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지만, 이후 체코 사회의 활동적인 두 집단인 당·정부관료와 군·경찰 등의 기득권층과 기성 정치를 거부하는 반체제집단에 속하지 않는 소비지향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한 침묵하는 다수를 지칭하는 용어로 변화했다.
우리나라에도 그레이존의 사례는 많이 있다. 6·25 전쟁 이후 포로들은 1949년 발효된 ‘제나바 제 3협약’으로 남한과 북한의 귀환을 거부한 채 제3국가를 대상을 국가를 선택한 이들도 많았다. ‘회색분자’라는 용어도 이즈음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거부한채 남성과 여성의 중간지대인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젠더운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니 갈수록 흑백 논리보다 다양한 회색지대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 현대사의 대세임은 분명하다.
최근 대한민국의 흐름을 보면 ‘그레이존’은 찾아 보기 힘들다. 촛불정국 이후 국민은 ‘아군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억누르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만 보더라도 그레이존은 아주 극소수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리는 찬·반의 대통령 지지율, 남·여혐오주의의 대립, 기업과 노조의 갈등, ‘타다’의 문제로 야기된 업계의 찬,반 현상들에 ‘그레이존’은 없다. 아니, 대다수의 회색분자들은 오로지 현업에 충실하며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껏 역사는 ‘그레이존’에서 ‘회색분자’들의 뒷받침 없이 변하지 않았다. 불변의 진리다. 문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국민 통합을 제일 큰 화두로 내세웠다. 하지만, 국민의 양극화를 청와대가 조장하거나 묵인한다는 오해를 할 정도로 현 정부는 양극화를 더욱 극대화 시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어찌보면 양당제가 가져오는 부작용의 산물일 수 있다.
다가오는 경자년 쥐띠해에는 쥐가 상징하는 꾀와 현명함을 모아 국민적 통합과 ‘그레이존’을 더욱 늘려보자. 세상이라는 큰 바퀴는 극단적인 사람들이 아닌 ‘회색분자’들의 시대적 담론이 모여 서서히 굴러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