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회 체질개선 초점…농가소득 증대 위한 농정혁신도 화두
검증 안된 '선심성 공약'도 난무‥.실현 가능한 정책 가려내야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등록 이후에도 일부 지역의 단일화 가능성이 무성하게 제기됐다. 하지만 출사표를 10인의 후보가 모두 최종투표까지 완주할 거로 보인다. 지역별로 지지세를 결집시켰던 과거의 선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의원 조합장의 '세대교체'가 단일화 논의가 무산된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 선거와 비교해 지역 내 유력 후보가 부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 동안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나서는 주요 후보들은 같은 지역 내에서 출마한 경쟁 후보들과 단일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지만 사실상 모두 불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같은 지역 내에서 출마한 후보로는 경기의 여원구 후보(양평양서조합장)와 이성희 후보(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 충청의 김병국 후보(전 서충주조합장)와 이주선 후보(아산 송악조합장), 경남의 강호동 후보(합천율곡조합장)와 최덕규 후보(전 합천가야조합장) 등이 있다. 전북과 전남으로 지역은 다르지만 호남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됐던 유남영 후보(정읍조합장)와 문병완 후보(보성조합장)도 각자 완주의사를 굳혔다.
여기에 천호진 후보(전 농협북대구공판장 사장)과 임명택 후보(전 경기 화성 비봉농협 외 4개 조합 지도부장)까지 더해 오는 31일 선거에는 총 10인이 대결을 펼친다. 후보등록 인원과 완주 인원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한 후보자측 관계자는 “각 지역 단일화의 데드라인이 사실상 설 연휴까지였는데 모두 불발된 이상 등록 후보 전원이 완주하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역대 최다 후보자가 쏟아졌고 후보자간 정책토론 한 번 없이 선거가 치뤄진다. 이로 인해 각종 공약들이 대부분 검증되지 않은 채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언적 공약이 난무하고 '깜깜이 선거'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반면 정책을 앞세운 후보들은 직접 발로 뛰며 자신의 공약을 선전하기 바쁠수 밖에 없다. 투표권이 주어진 전체 조합장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견 발표도 선거 당일 한 차례뿐 이라는 점도 이들에겐 아쉬운 대목이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세대교체가 이뤄진 젊은 조합장들이 투표하는 선거인만큼 결국 '정책'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이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각 후보의 정책에 쏠리고 있다.
◆중앙회의 경영혁신 공감대
농협중앙회의 '지역본부체제'를 지역 중심으로 개편하는 공약도 주목 대상이다. 거의 모든 후보(강호동·김병국·이성희 후보 등)가 지역본부를 개편한다고 약속했다. 공약이 현실화 될 경우 지역본부체제의 탈(脫)중앙화가 본격화 될 거로 보인다.
다만 지역본부 개편에 대한 방향성은 동일하나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강호동 후보는 '도지회장제도'를 도입하고 도지회장은 조합장이 맡도록 했다. 기존의 지역본부체제에 도지회장 직제를 신설하는 개념이다. 김병국 후보는 지역본부를 '도연합회체제'로 전환하고 산하에 지역본부를 두는데 도연합회장은 조합장이 맡도록 했다. 이성희 후보는 좀 더 세분화해 지역본부 역할을 크게 농정과 일반 업무로 구분하고 농정활동은 조합장이, 일반 업무는 직원이 맡도록 했다.
농협중앙회장의 '농민신문사 회장 겸직' 폐지 등 회장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공약도 눈에 띈다. 김병국 후보가 내건 약속이다. 농협 회장은 농민신문사 회장을 겸직하면 4억원이나 연봉을 더 받을 수 있고 농민신문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도 유지할 수 있어 그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김병국 후보는 회장부터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아야 '기본에 충실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며 이 같은 공약을 밝혔다.
◆직선제는 시대적 요구 "한목소리"
농협중앙회장 직선제를 담은 농협법 개정안이 2019년 마지막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농협중앙회장 후보들은 저마다 '직선제 전환'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공약에 공식적으로 담지 않은 후보자들 역시 각종 인터뷰를 통해 직선제 전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 지난해 직선제 전환에 한번 실패했고 농업계의 여론이 모아진 만큼 새 농협중앙회장이 선출되면 직선제 전환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 될 거로 보인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2009년 전체 조합장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에서 대의원 조합장만 투표하는 간선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간선제로 전환한 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소수 조합장의 표를 관리하기 위해 금품을 동원하는 문제가 불거지고 간선제에 따른 대표성 부족 등이 지적되면서 직선제로 다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상호금융 개혁' 로드맵 내놓은 김병국 후보
이번 선거에서 또 하나의 큰 쟁점은 상호금융 독립법인화로 대표되는 상호금융 혁신이다.
상호금융은 지역 농축협의 최대수익원으로 중요성이 매우 크다. 현재 농협중앙회가 상호금융과 신용사업을 동시에 관리하고 있는데 농협중앙회가 상호금융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다.
김병원 전 회장이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자본제약, 농협중앙회 차입구조, 전문성 부족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 선거 후보자 중에선 김병국 후보가 상호금융 체질 개선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김 후보자는 상호금융지역본부 추진(2020년), 금융지주 조합공개(2021년~2022년), 상호금융연합회 출범(2023년) 등 3단계에 걸친 이행 로드맵을 내놨다. 김 후보는 상호금융 운용수익률을 국민연금 수준인 4%로 올리겠다는 방안도 더했다.
다른 후보들은 상호금융 개혁과 관련된 구체적 실행방한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상호금융 추가정산 1조원'도 다수의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다. 농축협의 수익배분은 현재 연간 5000억원 수준인데 1조원으로 늘어나면 농축협의 경영 안정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큰 틀에서는 지역 농축협과 품목농협 지원 강화, 농협경제지주와 지역농축협 사이 사업경합 해소 등에 맥락을 같이하는 공약도 다수 제시됐다.
◆현실적 농정정책 앞세운 문병완 후보
농민들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제값에 잘 팔아주는 농협 본연의 역할을 찾겠다는 공약도 눈에 띈다.
농정과 관련된 공약은 역대 최초 '농업인 출신 중앙회장'을 노리는 문병완 후보의 단연 두각을 드러냈다.
문 후보는 ‘판매사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농산물 수급조절 기능을 수행하는 곡물거래소를 신설하고, 농·축협에 대한 업적평가를 물량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이외에도 농협의 사업 목표와 모든 시스템을 조합원 실익증진에 초점을 둔 현실적인 약속들을 내놨다.
△수확기 벼 매입 확대 △RPC 시설현대화 및 DSC 확충 등 쌀값 안정과 고품질화로 쌀농가 소득 증대 △ASF피해농가 보상금 및 생계안정 지원 △무허가 축사 구제 △원예농산물 100만톤 계약재배 추진 △신소득작목 개발 △수출가공을 통한 부가가치 제고 등 원예인삼농업 경쟁력 강화 등이 그 내용들이다.
또, 농가의 미래를 내다본 공약으로 △농장경영지도사 운용으로 조합원의 농장경영실태 종합진단 및 영농리스크 최소화 △빅데이타와 인공지능 기반의 산지수급조절 기능 강화 △ 사이버 공판장 개설로 판로확대 △농업인 연금저축(보험) 도입으로 노후생활 안정 △조합원 주치병원 운영으로 건강관리 시스템 구축 등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농·축협 중심의 농협...방법은 제각각
농협중앙회의 주인은 농·축협과 조합원이지만 그동안 그렇지 못했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 바로잡겠다는 게 후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를 차별화된 실행방안으로 밝힌 후보자들도 여럿 있다.
이성희 후보는 “농민을 농협의 주인으로 잘 섬기기 위해 농협재단을 조합원 복지기관으로 개편하고, 모든 사업을 농·축·원예·인삼농협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문병완 후보는 “농·축협 본위의 지도·지원을 기본으로 획일적 합병을 지양하고 장기 경영 컨설팅을 통해 강소농협을 육성하겠다”고 다짐했다.
강호동 후보는 “농·축협과 중앙회가 함께 투자하는 사업을 확대하되 서로 경합하는 사업은 농·축협에 이관하고, 농협중앙회장과 감사위원장의 조합장 직선제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원구 후보는 “농협 자회사에 대한 농·축협의 출자를 허용하고, 보험사업 수수료 전면 개정과 마트사업 장려금 확대 같은 숙원사항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