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21대 총선 공약의 하나로 ‘일하는 국회’ 공약을 내놨다. 골자만 추려보면 △국회 운영 상시화 △국회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통한 신속한 법안 처리 △출석률 저조 등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에 대한 세비 삭감이나 징계 등 제재 강화 △국민소환제 도입과 윤리특위 상설화 등이다. 민주당의 이 같은 공약은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더욱이 민주당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여당이 되면 야당을 ‘국정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공격하면서 ‘일하는 국회’를 외치곤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박근혜 정부를 떠올려보자. ‘경제가 어렵다. 정부 정책이 문제다’라거나 ‘집권하더니 달라졌다. 공약을 지키라’는 식의 정부를 향한 비판이 거세질 때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TV화면에 나와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국회 탓’ 더 정확히는 ‘야당 탓’을 하곤 했다. 박 전 대통령의 남 탓을 그토록 비난하던 민주당도 권력을 잡더니 이를 따라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들을 되짚어보자. ‘국회 탓’ ‘야당 탓’ 발언들이 부쩍 늘더니 이제는 청와대 행사의 단골 메뉴가 되다시피 했다.
이처럼 정권마다 국회가 달라져야 한다며 정치개혁 드라이브를 거는데 과연 국회는 달라졌나. 긍정적 방향으로 달라지기는커녕 갈수록 되레 뒷걸음질이다. 20대 의원들은 근태불량의 전형을 보여줬다. 역대 국회 중 본회의 시간이 가장 짧았다는데 출석도장만 찍고는 자리를 뜨는 의원들이 넘쳐났다. 출석률은 90%인데 재석률은 60%대, 그것도 대정부 질문 때는 4명 중 1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또 상임위 중심주의라면서 상임위 출석률이 본회의 출석률보다 낮다.
21대 국회라고 다르겠는가. 마침 이런 예언도 나왔다. “첫째, 21대 국회는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20대 국회보다 더 나쁜 국회가 될 것이다. 둘째, 먹고 사는 민생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셋째, 국민들이 반으로 나뉘어 전쟁상태를 방불케 하는 내전상태로 접어들게 되고 우리나라는 남미에서 잘 나가다가 몰락한 어느 나라처럼 추락하고 말 것이다.” 안철수 위원장은 “기득권 양당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이라고 전제했는데 마지막 세 번째 예언을 빼면 양당 구조와 무관하게 벌어질 일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정치에서는 총선도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인기투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6공화국 헌법 하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대권주자들의 이합집산에 휘둘리지 않은 선거판이 있었나. 심지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나 임기만료를 앞둔 정권에 대한 심판이 돼야할 총선에서도 차기주자가 판을 뒤집곤 했다.
21대 총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총선 역시 ‘대통령 또는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인기투표’라는 관성이 작용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이런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 국회에 정부의 견제역할을 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하는 국회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