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대통령이 틈만 나면 “중국의 어려움이 바로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한국과 중국이 코로나19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가 됐다. 자고 나면 확진자가 폭증하고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처럼 국제사회의 따돌림 대상이 돼 가고 있다.
동병상련의 시작은 지난 3일이었다. 전날 정부가 후베이성에 국한해 방문자 입국을 제한하자 ‘하나마나’라는 지적이 쇄도했고, 많은 국민들이 이에 대한 대통령의 응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대통령은 “공포와 혐오가 아니라 신뢰와 협력이 진정한 극복의 길”이라며 ‘중국인의 입국을 잠정 중단해 달라’는 요구를 중국인에 대한 혐오로 치부했다.
사람들은 황당해했다. 더 황당했던 것은 하나마나한 조치라는 비판에도 대통령이 중국에 해명하기 급급했다는 점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면서. 다음날 신임장조차 제출하지 않은 신임 중국대사가 한국 언론을 불러다놓고 생방송으로 “많이 평가하지 않는다”며 되레 핀잔을 놨다. 그리고는 “한국과 중국은 운명 공동체”라며 “역지사지 해 달라”고 했다. ‘한중 운명 공동체’라는 말은 2017년 말 방중 때 대통령이 먼저 꺼낸 말이다.
대통령의 황당 행보는 계속됐다. 20일 오후 한국 내 사망자 보도가 나온 몇 분 뒤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직접 전화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어려움은 한국의 어려움이라고 하신 것에 저는 매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단다. 이 말은 청와대가 특히 강조해서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은 상황이 심각해진 만큼 대중국 입국금지 조치에 앞서 사전양해를 구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혹시나’라는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그 동안 정부의 방역 대책은 내국인에 집중됐다. 사나흘 한국을 돌아다니다 훌쩍 중국으로 돌아가는 중국인들은 사각지대에 놓였다. 대통령은 3일 발언 때도 “해외에서 무증상자가 확진자로 판명되는 사례와 무증상자의 전파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고 인정했다. 증상도 나타나지 않은 중국인이 국내에 바이러스를 전파한 뒤 돌아가면 무슨 수로 역학조사를 벌인단 말인가. 추적 자체가 안 되니 중국인 관광객의 전파 사례를 아직 확인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이다. 그런데 정부나 여당 인사들은 하나같이 감염 사례 대부분이 내국인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며 실효성을 따진다.
정부는 우리의 의료수준을 자신하는데 한 국가의 의료 역량도 한계가 있다. 제한적인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상식적인 대응이라면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 유입원을 원천차단하고 나머지 변수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어야 했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이야말로 ‘근자감’이 아닌가. 13일 대통령이 “코로나 곧 종식”을 외치고, 20일 확진자가 80명을 넘어섰다는 발표가 난 몇 시간 뒤에도 짜파구리 오찬에서 대통령 내외가 파안대소했던 것은 어쩌면 ‘근자감’의 소산 아닌가. 경제는 대통령의 근자감이 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은 이런 근자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