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분담 받아들여도 막무가내로 해고 통지” 단협해지∙노동탄압 등 ‘칼바람’에 노동자 신음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정갑득)에 따르면 지난 4월말 현재 금속노조 가입 사업장 전체 242곳 가운데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사업장수는 전체 사업장의 82%에 달하는 199곳에 이른다. 지난 13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위기, 노동자 고통전담 증언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산하의 제조업 사업장이 심각한 구조조정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물론 정부마저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킨 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쌓아왔던 울분을 터뜨렸다. 또 이들은 “기업들이 경제위기를 돌파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노동자부터 해고하고 있다”며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동안 노조는 ‘경기가 어려워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사측에 어떠한 고통분담도 함께 하겠다고 말해왔다.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휴업에 합의해주고, 순환휴직을 하겠다’는 제안도 했지만 사측은 우리의 제안을 거부한 채 경제위기를 빌미로 일방적인 전환배치와 연∙월차 강제사용,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을 단행했다. 그런데 최근 ‘어렵다던’ 회사의 19개 생산라인 중 18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잔업에 특근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3억원에 달하는 이익잉여금이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금융위기를 틈탄 사측이 경영악화를 들먹이면서 인력감축을 단행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날 증언대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금속노조 경기지부 동서공업지회 조경일 쟁의부장은 회사의 정리해고 경과를 설명하면서 회사의 행태에 분노를 표했다. 경기 안산에서 자동차 내연기관용 피스톤을 생산하는 동서공업의 노동자 51명은 물량감소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노조에 따르면 이들은 사측에 ‘해고를 제외하면 어떠한 고통분담도 수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회사는 생산물량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최근 동서공업의 생산라인 중 대부분은 지금도 밤낮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경제위기는 곧 노동자 해고기회(?)
동서공업지회의 조경일 쟁의부장뿐만이 아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동명모트롤지회 최은석 교선부장은 “단협은 매년 쌓아온 노조의 결정체이자 재산인데 사측은 법의 허점을 악용해 단 한방에 없애버렸다”며 울분을 토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건설기계 부품 제조업체인 동명모트롤은 지난해 6월 두산그룹 인수된 뒤 같은 해 10월 사측으로부터 “기존 노동조합 단체협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대해 사측은 “새로운 단체 협약 수정안을 노조에 제시하고 교섭을 벌였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해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단협을 해지했다”고 밝혔지만 노조측은 “이 같은 일방적인 단협 해지는 전형적인 ‘노조 길들이기’”라며 “단협을 개정하기 위한 제대로 된 논의는 없었으며, 일방적으로 해지를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이와 관련 동명모트롤지회 최 교선부장은 “사측은 노사 일방이 단협해지를 통보하고 6개월 안에 노사합의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존 단체협약이 무효가 되는 현행 노동법을 악용했다”며 “사용자의 이런 전략에 따라 우리 지회는 지난달 16일부터 무단협 상태”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 부장은 이어 “헌법에 보장돼 있는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의 결실인 ‘단체협약’을 없애면 노동 3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진방스틸지회, DKC지회 등은 모두 동명모트롤지회와 같은 방식으로 단체협약을 해지 당했다.이외에도 무체혈 혈당기 등을 생산하고 있는 서울지부 남부지역 KMH지회는 “사측은 자회사 및 관계회사 살리기에 급급해 넉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했으며, 네비게이션 제조업체인 자티전자분회는 “지난 1월 회사가 38명에게 사직을 요구해 노조를 꾸려 철회요구에 나서자 분회장을 해고하고 27명을 정직시켰다”고 주장했다.
구조조정 사업장 대부분이 ‘중소기업’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정리해고 1순위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 4월 기준 금속노조 가입사업장 중 82%가 휴업, 근무변경, 전환배치,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중이다. 이 가운데 물량감소로 인한 휴업중인 업체가 78.4%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생산감소로 근무형태를 변경한 사례가 16.1%로 뒤를 이었다.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시스템을 바꾸는 ‘근무형태 변경’은 노동시간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제조업의 특성상 ‘휴업’과 더불어 노동자의 임금감소로 이어지게 되는 게 자명한 사실이다. 이외에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한 사업장도 26곳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근로자수로 따졌을 때, 약 4천여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퇴직을 종용당하고 있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게다가 현재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 등 노사가 협의중에 있는 사업장도 20여곳에 달해 정리해고 등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될 노동자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금속노조 내부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구조조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구조 조정 사업장 가운데 100인 이하 사업장은 총 91곳으로 4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10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은 60곳(30.3%)로 30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구조 조정 사업장의 76.3%였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구조조정률은 23.8%에 그쳤다.이와 관련 금속노조 임혜숙 정책국장은 “기업들은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 노동자를 잘라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특히 노동자들 가운데 힘없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임 정책국장은 이어 “기업의 ‘노사 고통분담’이라는 말은 허울일 뿐, 경제위기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만 전가시키고 있다”면서 “국내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43조원에 달하는데 이들 기업들은 사내유보금, 이익잉여금을 쌓아놓고도 국내 경제위기 극복과 고통분담을 위해 한푼도 쓰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