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발(發) ‘세종 천도론’이 나온 이후 세간에서는 “갈수록 노무현 시즌2”라는 말이 회자된다.
‘촛불정부’라는 기치 아래 문재인정부가 막 출범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이 정권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대통령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라는 말로 내정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고, 윤석열 검사가 일약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이후 실행력도 보여줬다. 외정에서는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와 하노이를 무대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드라마가 빅히트를 쳤다. 국정의 근간인 경제에 있어서도 허실(虛實)을 떠나 일단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방향성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문재인정부는 국정의 방향성을 잃고 ‘이슈 돌려막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끊임없이 쏟아지는 내로남불 사건들로 인해 평등·공정·정의라는 국정 핵심가치는 이미 무너졌다. 그리고는 그 공백을 윤석열 이슈로 채우고 있다. 윤석열을 찍어내고 그의 사람들을 때려잡는다고 해서 평등·공정·정의 사회가 온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개성에 의존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유효기간이 100일(미국 대선일까지 남은 기간)도 남지 않아 보인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염두에 둔다면 일단 한반도 긴장 유발을 최소화하는 상황관리에 치중해야겠지만 자칫 정부가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하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노무현 전 대통령)는 유혹에 빠질까 걱정이다.
무엇보다 경제가 갈팡질팡이다. 갖은 부작용과 논란에도 한두 해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하더니 한일 무역분쟁, 코로나 팬데믹 등 돌발 상황에 맞춰 정책이 춤을 춘다. 악재로 악재를 덮고, 새로 내놓은 정책으로 앞서 내놓은 정책을 덮는다. 최악은 부동산 정책이다. 코로나19라는 국난극복에 모든 국력을 집중시켜도 모자랄 판에 ‘우리의 해법이 옳다. 과거 정권의 해법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해 시장 혼란을 부추긴다. ‘불로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야당의 비아냥에도 정작 정권의 심장부에서 ‘강남불패’ 논란을 자초하는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이런 와중에 불쑥 던져진 ‘세종 천도론’은 그야말로 국정 혼란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한데 붙어 있어야할 국회와 정부부처가 별거를 강요당해 길국장·카톡과장을 만드는 촌극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인가. 고쳐도 벌써 고쳐야했을 폐단이지만 시점이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22년만에 최악이라는 2분기 -3.3%의 역성장에도 대통령이 “기적 같은 선방의 결과”라고 평가할 만큼 엄중한 시국이다. 국력을 코로나 극복 하나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수도 이전이 국력 분산을 감내해야 할 만큼 다급한 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당에서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공언했으니 수도 이전이 현실화된다고 하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것이다. 국회와 청와대만 덜렁 옮긴다고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한국판 뉴딜을 위해 다음 정권까지 5년간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당장 재정계획부터 누더기가 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