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마저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6일 수사심의위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대해 압도적 표차로 불기소 권고를 내렸지만, 검찰은 마치 국민의 ‘냄비’ 근성을 바라는 듯이 두 달 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수사심의위 결론 당시만 해도 이재용 부회장이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국에서 경영에 전념토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결국 검찰은 정부 여당 인사들의 바람대로 기소 결론을 내렸다.
정부와 검찰이 지탄 받을 부분은 표적 수사에 가까운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상식이나 논리와 관계없이 원하는 바는 반드시 강행하고, 자기네 편의 과오는 무조건 감싸는 집권 여당의 모습은 이번 검찰 인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수사심의위에서 내려진 결론을 뒤집고 검찰의 의지를 관철한 것은 아홉번 만에 처음이다.
특히 그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사안이 검찰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일사천리로 기소 판정이 난 것도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번 정권을 겨눈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됐다는 점이다.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독직(瀆職) 폭행 혐의를 받은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에 대한 감찰 및 수사를 진행하던 정진기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또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6명 중 5명이 이번 인사로 모두 흩어졌다. 반면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승진하며 사실상 감찰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드루킹 특검’을 맡았던 장성훈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1부장 역시 사의를 표명했다. 장 부장검사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고(故) 노회찬 의원,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 등을 수사했었다.
한명숙 사건 수사팀도 사실상 좌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응석 청주지검 차장은 대구고검으로, 엄희준 수원지검 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은 창원지검 형사3부장으로 전보됐다.
여권 인사의 수사와 연관됐던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되거나 사의를 표명하면서 사실상 이들에 대한 수사는 종결되는 분위기다. 인사를 이유로 이 부회장의 기소 결정을 내렸다면, 여권 인사에 대한 수사는 왜 이대로 흐지부지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한 검찰은 분명 개혁의 대상이 맞다. 국민들은 검찰이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검찰 개혁 방향이 검찰이 정부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라면, 이 역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번 일로 삼성이 전세계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불구속인 만큼 총수 공백은 없겠지만, 사실상 경영에 집중하기는 힘든 상황이 됐다. 한국의 주력 효자 수출상품인 반도체 시장의 격변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사법리스크에 직면한 삼성이 중대 의사결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또 이재용 부회장을 탓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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