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눈먼 사회…이러다 사람도 ‘짝퉁’ 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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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에 눈먼 사회…이러다 사람도 ‘짝퉁’ 나올라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6.22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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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보다 더 명품 같은 ‘짝퉁’ 판쳐…국제협상에까지 걸림돌

‘파격특가’ 스크래치 상품도 가짜 가능성 높아
“美 감시대상국 제외” 불구 여전히 ‘짝퉁공화국’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서울의 한 지하철 역에서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중 한명이 친구에게 새로 산 ‘명품가방’이 예쁘다고 칭찬하며 어디에서 얼마에 구입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듣고 있던 친구는 “자주 가는 인터넷 쇼핑몰에 살짝 스크래치 난 물품이라고 올라 왔길래 보자마자 당장 질렀지 뭐. 스크래치 난 부분이 어딘지 잘 티도 잘 안 나는데 가격은 반값이야. 예쁘지?”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같은 상황을 전문가들이 지켜봤다면 안타까워했을 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는 ‘명품로스(명품업체에서 만들었지만 하자가 있어 출고하지 않은 제품)’ 중 절반가량이 중국 등지에서 수입되거나 국내에서 생산된 ‘짝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부 소비자들은 악덕 판매업자에게 속아 짝퉁을 명품업체에서 생산한 하자제품인 것으로 믿고 구매하고 있다. 하지만 개중에는 처음부터 짝퉁인 것을 알고도 구입하는 소비자들 역시 상당수 존재한다. 언젠가부터 ‘명품병’에 걸려 ‘짝퉁 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안게 된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했다.

“경기불황으로 동대문을 찾는 손님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짝퉁가방이나 지갑을 찾는 손님들이 줄어든 건 아니에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이 팔고 퇴근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요즘에도 한 달 평균 매출이 1000~1200만원 가량은 되요.”

동대문의 모 종합쇼핑몰에서 십여 년째 짝퉁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장 김모씨의 이야기다. 이 불황에, 또 동대문 시장 내 수많은 짝퉁명품 판매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 매출이 1천만 원이 넘는다면 꽤나 쏠쏠한 돈벌이다. 과거 국제 테러단체들이 위조상품 거래에 손을 뻗쳐 이를 조직의 자금줄로 활용해왔다는 사실만 봐도 짝퉁거래는 그만큼 ‘남는 장사’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세계관세기구(WCO)에 따르면 2004년 기준 전 세계 짝퉁시장 규모는 물품교역량의 5∼7%인 약 5,120억달러(한화 약 512조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주문에서 생산, 공급, 유통 시스템을 쉽게 구축할 수 있는데다 각국 정부의 단속을 피할 수도 있어 가짜 모조품의 거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베끼고 만들고, 수출하고, 또 베끼고…

▲ 지난 5월 27일 코엑스 태평양홀에서 관세청 주최로 열린 '2009 위조상품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직원으로부터 한 브랜드의 진품과 위조품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4월 인천세관은 중국의 짝퉁공장에서 밀수해 온 물건을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해 온 이모(34)씨 등 일당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2005년 10월부터 최근까지 A사이트를 비롯한 4개의 인터넷 쇼핑몰을 차려놓고 짝퉁가방을 진품으로 속여 팔아 4년간 180억원에 달하는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다. 조사결과 이들은 샤넬, 에르메스 등 ‘가짜’ 명품가방을 “하자가 있어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매장에 입고되지 못한 ‘로스상품’”이라고 속여 판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로스상품이기 때문에 정상가격의 10분의 1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환상적인(?) 문구도 잊지 않았다.게다가 이렇게 판매한 물건들은 외국에서 직수입해 온 물건이라는 이유로 환불이나 교환도 해주지 않았다. 모든 불이익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게끔 돼 있는 것.또 일부 상품에는 ‘명품스타일’ ‘SA급’ 등의 표현을 써 짝퉁과 진품을 구분 판매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해, 소비자들이 의심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일 서울세관에서도 고가의 짝퉁 가방을 제조한 이모(44)씨와 짝퉁 판매브로커 서모(32)씨 등 일당 4명이 상표법 위반 혐의로 검거됐다.서울세관에 따르면 판매브로커 서씨는 지난해 1월부터 서울 면목동 소재 단독주택 지하에서 짝퉁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이씨 등에게 샤넬, 구찌, 루이비통 핸드백 등 중?고가 브랜드만을 골라 ‘짝퉁’ 제조를 주문한 후 동대문 시장 등의 도?소매 업자에게 개당 7~10만원에 판매해왔다. 또 서씨는 중국에서 밀수입해 온 가짜 명품들을 노상에서 직접 판매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 서울세관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중국 등지에서 밀수입해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밀수입시 적발될 수 있다는 위험 부담과 국내와의 제조기술 차이 등으로 반제품을 밀수입해 국내에서 제조?완성한 후 국내에서 판매하거나 역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또 “짝퉁거래 사이트의 경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이를 감시하는 관계부처 공무원들이 퇴근한 후인 6시 이후나 주말에만 영업하는 전략을 고수하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 협상테이블서 ‘작아지는’ 까닭 왜?
 

▲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중 한 장면. 특정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전 세계적으로 중국이 가장 큰 짝퉁 제조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그에 못지않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지난 4월 관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5년 이전까지 ‘일본에 지적재산권 침해물품을 가장 많이 수출한 나라’라는 부끄러운 수식어를 얻어 왔다.

정부의 위조 상품 수출 단속으로 2004년 50.2%, 2005년 44.9%, 2006년 44.5%, 2007년 20.0%, 2008년 12.4%를 기록하는 등 대일본 짝퉁 수출량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관세청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의 일본에 대한 지적재산권 침해 물품 수출 비율은 1위인 중국(81.5%)에 이은 2위다.하지만 짝퉁 제작 판매와 수출로 인한 더 큰 문제는 국가 이미지 실추는 물론 외국과의 무역협상에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되고 있다는 점이다.이와 관련 서울세관 조사4관 박원범 과장은 “해외 명품의 본고장은 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인데 이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명품 제품을 베껴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우리나라가 예쁘게 보일 리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며 “이는 종종 국가별 외교 협상에서 불리한 카드로 작용되곤 한다”고 설명했다.박 과장은 이어 “지속적인 단속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컨테이너 가장자리에는 합법적인 제품을 넣고, 가운데에 위조품을 숨기는 ‘알박기’ 수법 등을 통해 밀수입, 수출하는 것을 적발해내기란 쉽지 않다”며 “인터넷 판매사이트에 대해서는 수시 검색과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없는 ‘명품카피국’ 오명 벗기 해법은

한편 최근 우리나라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지적재산권 감시대상국에서 처음으로 제외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미 USTR은 지난 4월 31일 ‘2009년 스페셜 301조 보고서’를 발표하며 “한국의 지적재산권 보호가 상당히 개선됐으며, 지적재산권 제도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을 평가해 감시대상국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이는 스페셜 301조 보고서가 최초로 발표된 1989년 이래 21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우리나라는 그동안 매년 우선감시대상국(9회)이나 감시대상국(11회)으로 지정돼 왔었다.하지만 전문가들은 “‘짝퉁천국’이란 오명을 얻은 한국은 국가이미지 쇄신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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