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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금호그룹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협상이 끝내 결렬됐다. 항공산업이 국가기간산업으로 우리나라의 관광 등 연계 사업의 첨병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2대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협상 무산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남는다.
그러나 더욱 아쉬운 점은 현산의 태도다. 현산은 5개월이 넘도록 재실사 요구만 했을 뿐 인수에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산의 움직임을 애초에 인수 무산 책임을 산업은행과 금호그룹에 떠넘기기 위한 작업으로 보고 있다. 재실사를 거부하면 이를 귀책 사유로 삼고 계약이행금 2500억원을 돌려받겠다는 속내다.
현산은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사실상 인수 의지가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인수가격을 낮추기 위한 재실사 요청이었다기보다 향후 계약금 반환소송에서 거래에 충실히 임했다는 명분으로 활용하기 위함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사실 코로나19는 항공업계에 날벼락과 같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이었다. 현산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산업은행이 1조원을 깎아주겠다며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을 요청했음에도, 재실사만 요구하며 이를 외면한 것은 애초에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정몽규 회장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코로나19로 하늘길 95%가 막힌 상황에서 인수하는 것은 투자가 아닌 도박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 이는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인수 협상이 무산된 이유를 코로나19가 아닌 금호산업 측의 선행조건 미충족에 따른 것으로 못 박은 것은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5개월이나 협상을 끌어온 장본인이 금호산업과 산업은행 측의 인수계약 해제 통지에 유감을 표한 것도 그렇다.
인수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사유가 발생했다면, 빠른 포기가 피인수기업의 재도약과 기업이미지 재고에 훨씬 이득이었을 것이다. 실사 당시 현산에서 나온 인수 관련 운영위원단은 아시아나항공에 거주하면서 컨설팅 회사까지 동원하며 많은 요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 측 직원들은 이미 정몽규 회장이 오너라는 생각으로 물심양면 협조했다고 한다.
비록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상대 기업의 가치 훼손과 비방이 옳은 행동은 아니다. 코로나라는 변수는 사실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현산은 SPA계약 체결 후 거래종료 시점이었던 4월 이후 5개월이 지날 때까지 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재실사에만 매달렸다. 솔직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코로나19는 전세계 항공사에 재앙이었다. 세계 각국이 자국 항공사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탈리아 알리탈리아항공의 파산에 따른 국영화 수순 진행과 독일의 루프트한자의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지분 참여, 미국 정부의 항공산업 지원은 항공사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 점에서 이런 형태의 협상 결렬은 아쉬움이 남는다.
현산은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하면서 계약이행금을 일부 돌려받았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싶겠지만, 엄연히 사안이 다르다. 당시에는 분식회계에 대한 문제가 있었고 약정과 달리 확인실사를 못한 부분이 대법원에서 크게 작용했다.
업계에서는 애초에 매출액 4조원의 현산이 7조원의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이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측에 “애초에 현산은 아시아나를 인수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회사였다”며 “거래를 지연시켜 계약금을 돌려받을 생각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세계 항공사가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저력 있는 기업들이다. 왜 산업은행이 1조원을 깎으면서까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을 성공시키려 했는지, 세계 각국이 엄청난 금액을 투입해 항공업을 살리려 하는지 좀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