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참패의 여파가 한창일 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처음은 인기가 높아도 실력이 없다. 반대로 경험과 실력이 쌓이면 인기가 없어 정책을 추진할 힘이 없다. 정치에 대한 나의 고민이자 도전이다”라고. 빈 말은 아닌 듯하다. 23일 국민의힘 의원들 앞에서 안 대표가 보수야권이 처한 혹독한 현실을 진단했는데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다. 핵심만 추려보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여권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정치지형이다. 안 대표는 “이 상태라면 정권교체는 물론 내년 서울시장도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집권세력은 강고하다. 이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집권세력이 (과거)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2030세대들과 어울리며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안 대표는 “젊은 친구들하고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며 “야당에 대해서는 아예 귀를 닫는다. 관심이 없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내놔도 메신저에 대한 신뢰도가 전혀 없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안 들리는 것”이라고 했다. 원인은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누적된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안 대표는 “그 사람들(젊은 친구들) 표현으로 신뢰할 수 없지만 일은 잘한다는 이미지가 (과거에) 있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유능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잃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년들이 이런 상황이니 40대, 50대는 불문가지다. 40대는 갖은 악재에도 현 정부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는 정권의 확고한 지지기반이다. 50대는? 안 대표는 “50대는 이제 세대교체 됐다. 과거 야권의 든든한 지지층이었던 50대도 세대교체 되면서 여권 지지가 많은 지형이 됐다”고 봤다.
둘째, 보수야권의 공감능력 부족에 대한 지적이다. 안 대표는 “야권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가 (야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단적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는 개천절 집회 문제가 있다. 안 대표는 “우리끼리만 만족하는 집회나 유튜브가 무슨 소용인가. 화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여론이 야당 편이 되는 게 아니다. 대중을 설득해서 내편으로 끌어오는 게 잘 싸우는 것”이라며 “이번에 집회를 기획하고 있는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공감 가는 말은 야권의 집권 목표다. 안 대표는 “야권은 집권 자체가 목표가 아니고, 집권 이후 성공한 정부를 만들어야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번 정권은 다르겠지’라는 국민의 기대와 희망이 그동안 수차례 정권 교체를 이끌었다. 그러나 기대와 희망은 대부분 실망과 배신감으로 이어졌다. ‘촛불 정권’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공언했지만 결과물은 어느 청년 정치인의 평가처럼 ‘대국민 연설용의 공허한 단어 반복’ 수준이다. 보수야권에서야 정권교체가 되면 우리 사회의 병폐가 사라질 것처럼 말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묻지마 정권교체론’은 보수야권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