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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끌어온 LG와 SK 간 전기차 배터리 분쟁이 극적 합의로 종결됐다.
지난 2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최종 판결을 내린지 2개월 만에 양사가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근 특허소송 예비판정에서는 ITC가 SK의 손을 들어줬다. 특허소송과 별개로 영업비밀을 침해한 SK는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접어야 하는 위기에 내몰렸다.
SK는 미국 배터리사업 철수라는 배수진을 치고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ITC 결정 거부권 행사에 매달려 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을 하루 앞두고 양사가 전격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은 한・미 행정부의 합의 종용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끝까지 가게 되면 양사 모두 피해를 되돌리기 힘들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도 합의에 이르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배터리 분쟁 과정에서 양사 모두 커다란 교훈을 얻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선 LG는 LG화학 배터리 사업분야 소속 직원들이 대거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인재 육성과 인재 모시기에 등한시한 결과라는 비판은 무척 아팠을 것이다.
LG그룹 차원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짠 연봉에 자부심만으로는 직원들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소송에서 ‘독한 LG’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성과도 있었다. 또한 글로벌 기업경영 윤리 지키기에 대한 원칙도 심어줬다는 평가다.
SK로서는 ‘사회적 가치 창출’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선두주자로서의 좋은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 왔는데 이번 분쟁으로 엄청난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그동안 사회적 가치 창출을 선도하고 ESG 경영을 뿌리 내리는 혁신 기업의 이미지를 굳혀 왔는데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늦게나마 합의를 도출함에 따라 SK는 결과에 책임지는 심플하고 산뜻한 혁신기업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 나갈 수 있게 됐다.
또한 양사의 합의는 국내 기업 간의 분쟁은 경쟁국의 기업들만 이롭게 한다는 비판에서 모두 자유로워졌다는 데 있다. 양사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괜한 힘을 쏟다보니 중국의 CATL, 일본의 파나소닉 등이 배터리 기술력을 높여가면서 글로벌 배터리사로서의 위상을 굳혀가는 빌미로 작용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도 배터리 수급에서의 불안전성을 해소하기 위해 자급자족의 로드맵과 배터리 형태를 파우치형에서 각형으로, 방식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사용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국내 배터리 회사들의 의존도를 줄여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양사는 나름의 억울함과 아쉬움이 남아 있겠지만 이번 분쟁 종결을 시작으로 앞으로 글로벌 점유율 확보에 대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경쟁국의 도전들을 물리치고 양사 모두 웃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말처럼 그간의 배터리 분쟁으로 쌓였던 앙금들을 씻어 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