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의 속성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좇아 정책공약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네거티브’ 한 방이 가지는 파괴력은 수많은 공약을 능가한다. 당장 유권자부터 어려운 공약 설명보다는 후보자를 둘러싼 추문에 빠져드는 게 현실이다. 인간 본성을 양분 삼은 네거티브의 끈질긴 생명력에 선거 때마다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 “네거티브 선거는 이제 끝내야 한다”는 말들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인사청문회 때마다 후보자의 능력과 정책이 중요하다면서도 투기·위장전입·불법증여·병역회피 비리가 후보자의 낙마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마 인사청문회는 형식적 절차니 임명권자가 임명을 강행할 수 있지만 선거는 민심의 직접 심판을 받으니 네거티브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후 이런 선거판이 벌써 35년째다. ‘비판적 지지’니 하는 말들은 학창시절의 추억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무슨무슨 ‘빠’들의 맹목적 지지가 유행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선거가 부활한 뒤 선거판은 거대한 이권을 다투는 이전투구의 장이 됐다. 대통령과 광역단체장이 가진 막강한 인사권에 선거 때면 줄서기에 바쁘고, 동네 골목마다 선출직 공무원을 노리는 이들이 생겨났다. 선거 때면 네거티브가 잡초처럼 번져나갈 수밖에 없는 토양이 한국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우리 선거판의 네거티브 의존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당시 오세훈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은 그가 과거 서울시장 재임 중 내곡동 땅과 관련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불법부당한 관여를 했는지가 요체였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한 쪽에선 그에 대해 제대로 된 입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네거티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그 결과 의혹제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 후보를 내곡동 측량 당시 봤다는 사람이 등장하더니 “선글라스 끼고 키 큰 사람으로 오 후보를 한눈에 알아봤다. 생태탕을 먹은 기억이 난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러더니 하얀 면바지에 페라가모를 신었다느니 아니라느니 공방이 이어졌다.
한심한 것은 선거 당일까지 생태탕과 페라가모 이야기가 서울시장 선거판을 뒤덮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추문에 끌리는 인간 심리도 작동을 멈추게 된다. 네거티브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한국 유권자라면 염증을 느낄 수도 있다. 실제 오 후보의 압승으로 끝난 선거 결과는 많은 유권자가 염증을 느꼈다는 방증이 됐다.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지 정확히 5개월이 지났다. 지금은 네거티브가 가장 판치는 대선 시즌, 그것도 여야 모두 경선 일정에 들어간 상태다. 경선 일정이 한 발 빠른 민주당 경선은 네거티브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이젠 국민의힘 차례인가보다. 윤석열 후보를 겨냥한 고발사주 의혹이 요란하다. 그런데 실체가 쉽게 드러날 것 같지는 않다. 실체 없는 의혹에 매달리면 결국 생태탕 꼴이 날 수밖에 없다. 생태탕 선거의 기억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