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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재영 기자]과거 정부 대통령 선거철에 국제 IT 전시회에 참석했던 한 대선 후보를 본 적 있다. 다른 후보와 달리 경제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킬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대선 후보도 실물을 보기는 드문 만큼 당시에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회의원들은 필요할 때만 전통시장이나 공장, 전시장을 방문하는 것 같다. 국민을 상대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그런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게 효과적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속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선거철 횡행하는 포퓰리즘식 공약과 더불어 의원발의가 남발되는 것이다. 간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법 개정안에 ‘삼성법, 현대법, 롯데법’처럼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 홍보효과를 겨냥한 의도가 법률안에 섞여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최근 한 대선 경선후보가 발의한 법에 대해 여러 경제단체들이 합동으로 부작용을 우려하는 논평을 내놨다. 그 내용을 떠나서 법률안 발의 이전에 관련 업계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처럼 일각에서는 의원안 발의 과정이 부실하다는 시각이 있다. 이전에는 관련 상임위에서나마 법률안을 검토하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 의원안이 여당 의원들만으로 단독 의결처리된 일도 있었다. 이 법안 역시 업계의 의견수렴 절차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성토가 나왔다. 거대여당이 형성된 이후 입법 추진력은 생겼지만 법안 검토가 약해지는 부실함이 보인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규제정책을 입안할 때는 사전적인 ‘규제영향분석’을 통해 규제의 품질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안과 행정입법에 대해서는 규제영향 분석이 일반화돼 있지만 의원안에 대해서는 제도화돼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한다.
OECD 회원국의 경우에도 규제영향분석은 대부분 정부안에 대해서만 의무절차로 제도화 돼 있다. OECD 회원국의 대부분은 그러나 내각이 입법을 주도하는 의원내각제 국가여서 가결되는 법안의 80% 정도가 정부안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부안에 대해서만 규제영향분석이 의무화돼 있다고 해도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규제법률이 규제영향분석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OEDC는 한국의 경우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 중 의원안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 규제정책 품질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OECD 규제정책위원회는 세계 각국 정부의 규제정책을 분석·평가하고 있는데, 2017년 한국 정부의 규제정책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의원안에 대해서도 규제영향분석을 실시하거나 국회 내에 규제 품질관리를 위한 상설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최근엔 네이버, 카카오에 대한 플랫폼 규제 강도가 거세지는 양상이다. 대선을 앞두고 플랫폼 대책이 대선공약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플랫폼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에 대해 그동안 너무 방치해왔다는 비판 여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보여주기식 의원안 발의 남발로 이어져서는 업계 성장을 저해하는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충분한 진단과 대책, 규제 품질관리를 위한 숙고의 시간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국회가 국회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회에는 이미 의원안 발의시에 규제영향분석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국회는 스스로를 규제하는 법안에 동조할 선의와 용기가 있는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사뭇 관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