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5대 그룹을 포함한 재계 주요 기업에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주요 기업들이 기업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 현대자동차, LG그룹 계열사, SK네트웍스, 롯데쇼핑 및 롯데하이마트 등을 비롯해 현대제철, GS건설, 대우건설 등 20~30여 기업에 주주대표소송 서한을 보냈다.
국민연금의 이번 소송 추진은 지난해 연말부터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약 200여 곳의 국내 주요 기업들의 과거 10년 동안 임원들의 배임 및 횡령 등 불법행위 등을 포함한 경영활동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송 대상을 20~30개 기업으로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은 이 같은 활동으로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지만 재계에서는 국가의 공적 자금인 연금이 사적 영역인 기업 활동에 도를 넘는 간섭을 하는 게 이치에 맞느냐는 입장이다. 재계에서는 연금사회주의라는 성토도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300개사에 달하고, 상장사 지분을 0.01%(일반 법인은 1%) 이상만 갖고 있어도 주주대표소송이 가능해 1000곳이 넘는 기업이 국민연금의 사정권에 있다. 재계에서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 등 상당수 유력 기업이 중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 눈치를 봐야 하고, 소송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며 우려하고 있다.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을 통한 기업 옥죄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책위로 일임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수책위가 소송 전권을 쥐면 사실상 보건복지부, 즉 정부의 입장대로 소송 행위가 진행될 우려를 낳는다.
논란이 커지자 학계에서도 잇따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넘어 주주제안이나 대표소송을 추진하는 것은 건전한 목적의 대화를 넘어선 과도한 경영간섭”이라고 비판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도 “기업의 건전한 경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대표소송보다 투자기업 주식을 전량 매각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민연금 수책위는 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주주대표소송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