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의 통장 수만 개가 일본에서 발견되면서 이들에 대한 전후 배상 문제에 불을 댕길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일본 정부와 기업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방어막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당장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이 협정은 양국 국민의 재산·권리에 있어서 모든 청구권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미지급 임금도 포함된다는 게 이들의 해석이다.그럼에도 실제 미지급 임금이 적립된 통장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사실은 적잖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아직 정리 중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미지급 임금의 규모와 당사자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당사자와 유족의 지급 요구가 이어지는 것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한일청구권협정의 효력이나 정당성에 대한 논란도 촉발될 수 있다.게다가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 지난해 대법원이 ‘개인의 청구권이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며 파기환송한 점을 고려하면 미지급 임금이 반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릴 것으로 보인다.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통장 발견으로 상당한 파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타 오사무 도시샤(朋友社)대 교수(조선근현대사)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와서 통장이 몇 만 개가 나왔으니 일본 정부가 미지불 임금에 대한 조사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일청구권협정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통장의 존재가 확인돼 파문이 커지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다시 묻게 될 것”이라며 “올해 7월 서울고법과 부산고법도 일본기업이 징용노동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고 강조했다. 오타 교수는 일본 정부, 유초은행, 기업 등이 출연한 기금을 만들어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제언했다.야마다 쇼지 릿쿄(立敎)대 명예교수(일본근현대사)는 “일본 기업이 조선인 노동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통장을 주지 않았다”며 “조선인은 탄광 등 위험한 중노동분야에서 노역했고 일본인보다 산업 재해도 많이 당했다”고 말했다.쇼지 교수는 “징용노동자는 용돈 정도밖에 받지 못했고 고국의 가족에게 보낼 돈도 부족했다”고 지적하며 “당사자나 유족이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여러 소송을 내고 있고 이것이 전후 배상 문제의 전형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저금을 장기간 보유한 유초은행이 당사자나 유족을 찾고 화폐 가치를 환산해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일본 측은 한국 대법원에서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이 징용피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어서 미지급 임금 공방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전망이다.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