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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누군가 아이폰을 감성폰이라고 말할 때 속으로 비웃은 적 있다. 지금은 반성한다. 감성폰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구축한 애플의 노력을 비웃었던 셈이다. 마케팅의 귀재라는 스티브 잡스를 비웃은 우매함이다. 세계 최초 기술에 익숙한 삼성 갤럭시폰을 늘 가까이서 접하다보니 감성폰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간과하게 됐다.
얼마 전 ‘헤이트풀8’이라는 영화를 봤다. 가장 최근에 본 게 아마 세 번째였을 것이다. 내용과 장면을 잊을 때쯤 다시 보면 처음 못지않게 재밌다. 쿠엔틴타란티노의 영화다. B급 감성을 다루지만 그의 영화는 B급 평가를 받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보고 B급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오락적이고 자극적이며 본능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B급은 대중적인 흥미를 유도하기에 유리해 보인다. B급은 얼핏 사람이 게을러지는 감각과도 비슷하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는 행위가 A급이라면 B급은 그걸 나중으로 미루고 TV,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오락을 즐기는 식이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유혹을 끊기가 쉽지 않다. 혹은 공부가 귀찮아서 오락에 정신을 내던지기도 한다. 영화도 좋은 작품을 찾아보지만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단순한 영화를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이 더 많을 것처럼 심오한 영화보다 대중적인 영화가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예술영화를 깔보는 사람도 없다.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옳다는 걸 알 듯이 예술영화는 누구나 지향한다. 자녀에게 영화를 보여주라고 하면 B급보다는 예술영화를 택할 것이다.
쿠엔틴타란티노의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인기도 많은 이유는 B급이지 않은 B급의 매력과 A급의 미학을 동시에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혹자는 그의 영화가 유해하고 통찰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필자의 경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거나 권선징악 같은 통념을 색다르게 풀어가는 플롯, 장면 등에서 심미적인 감동을 느꼈다.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와 스티브 잡스는 마케팅을 ‘가치’라고 했다. 그가 말하길 위대한 마케팅은 상품을 얘기하지 않는다. 고객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애플이 누구인가’, ‘애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세상 어디에 적합한 기업인가’이다. 그런 가치 지향적인 부분이 충성고객이 많은 애플의 비결일 것이다.
영화와 같다. 사람들은 휴대폰의 기능에 신경쓰지만 상품을 만든 기업의 본질에 대해서도 의식하고 있다. 필자는 디자인이나 색감이 좋아 선호했던 의복 브랜드가 있다. 그 브랜드에 더 충성하고 싶어 회사에 대해 알아봤는데 과거 갑질 사례를 보고 실망했다. 평소 B급에 끌리다가도 A급을 지향하게 되는 의식의 흐름과 같다.
샤오미는 가성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애플의 마케팅 전략을 적극 따라한 점도 지금의 성공에 일조했다. B급은 유행을 따르지만 A급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충성고객층을 형성한다.
상품의 기능과 성능은 반짝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는 그 진정성에 따라 평생 고객도 만든다. 최근 기업들도 그런 지속가능성장을 위한 가치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은 험하다.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순 없듯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 때론 손해도 감수하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어떤 기업이 이윤만을 좇는지 국민은 보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