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고수정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정부의 핵심 기조로 불리던 ‘경제민주화’ 법안은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일부 법안의 입법화를 끝으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기초의원 및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 여부는 여야의 대치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줄줄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대선 노년층의 표를 흡수한 ‘기초노령연금’도 공약 파기 수순에 들어갔다.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소득 하위 80%에게 약 9만원 가량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소득과 관계없이 65세 이상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이었다.그러나 조만간 발표될 정부안은 범위와 금액이 모두 축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수준 하위 70% 이하 계층을 대상으로 소득 또는 국민연금 수령액과 연계해 차등지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기초노령연금 후퇴 책임을 지고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의 표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공약의 후퇴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노인들의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정권 출범 뒤 구성된 국민행복연금위원회에서는 소득 하위 70~80%로 지급 대상을 축소하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기초노령연금과 함께 박빙의 대선에서 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공약 중 하나인 ‘4대 중증질환 100% 국가보장’도 환자 부담이 큰 3대 비급여는 제외하고 일부 고가항암제 등에 건강보험을 더 적용하는 방안으로 물러났다.이렇듯 정부가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수정하는 이유는 단연 ‘재정’ 때문이다. 기초연금·무상보육·4대 중증질환 보장확대 등 주요 복지 공약을 이행하려면 정부 추산만으로도 약 80조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반기 10조원에 가까운 세수결손이 발생하고 경기회복세가 지지부진한 상태인데다, 대통령도 인정하듯 FIU(금융정보분석원)법 등 관련 입법의 수정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확보가 쉽지 않은 상태다.

“복지 공약을 위한 증세는 절대 없다”던 박 대통령이 지난 16일 3자회담에서 “세출구조조정과 비과세 축소로 복지재원을 마련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공감대 하에 증세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른바 ‘증세 없는 복지’의 비현실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후퇴 목록에 ‘검찰개혁’도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국회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는 상설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에 대해 여야 이견으로 합의안을 내지 못한 채 ‘유명무실’한 상태로 문을 닫는다.23일 마지막 전체회의에서도 새누리당은 정치적 의혹 사건이 생길 때마다 특별검사를 임명해 신속하게 수사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충분하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갖춘 상설특검을 요구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특별감찰관제도 임명 절차와 권한 등을 두고 평행선을 달렸다. 사개특위는 이와 관련된 사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길 예정이지만, 법사위로 넘어가도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대선 공약이 줄줄이 후퇴하자 야당에서는 “물타기 용이자 전략차원의 쇼일 뿐”이라며 박 대통령을 향해 “선거는 여왕급인데, 선거공약실천은 무수리급인 것 같다”고 원색 비난했다.이에 따라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일종의 ‘선거 캠페인’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