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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1373명에 이르는 대규모 특별사면·복권을 단행했다. 가장 논란이 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비롯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부정과 비리로 사법부의 단죄를 받았던 사람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번에도 사면의 명분은 '국민 통합'이었다. 재벌 총수 사면이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이 따라 붙는 것처럼 정치인 사면은 항상 국민 통합을 그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정치인을 교도소 밖으로 꺼내주면서 외친 통합이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애초에 기억에 각인된 적이 없다. 정치인 사면이 국민 통합으로 귀결되는 어떠한 합리적, 논리적 과정을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번 사면의 더 큰 문제는 '내 편들기'가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점이다. 정적 혹은 상대 당의 거물급 인사를 사면한다면 '통합'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약간은 끄덕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면 명단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 절반 이상이 사면을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형기 15년과 미납 벌금액 82억원을 면제받고 자유의 몸이 됐다. 아울러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로 처벌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도 복권의 수혜를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던 전 비서관들과 국정원 특수 활동비를 뇌물로 받은 최경환 전 부총리, 특활비를 청와대 등에 상납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포함됐다.
야권 인사로는 스스로 사면을 거부한 김 전 지사를 억지로 명단에 '구색용'으로 끼워 넣었다. 또 김 전 지사를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죄를 물어 재판에 넘긴 사람들이다. 죄를 주고 죄를 사하는 모양새가 이번 사면에서 연출된 것이다. 야권에서 '촛불 혁명'을 배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들을 풀어주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대통령의 사면권에 강한 반발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들리는 말로는 '도둑을 풀어주면 도둑질 밖에 더하겠나'라며 대통령의 사면권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해당 논리라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를 사람을 풀어주면 부정과 비리 밖에 더 저지르겠나'라고 할 수 있다. 검사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실 특별사면은 이처럼 3권 분립의 '예외 영역'에 있는 특권이다. 사법부의 최종 결정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입맛대로 번복하는 것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허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 위에서 이러한 사면도 행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법부의 판단인 재판 결과를 변경하는 만큼 대법원장 및 범죄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의 의견 청취를 의무화하는 방안과 입법부인 국회에 보고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고민할 때가 됐다. 더 나아가 이런 논의를 윤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공론화시키는 게 옳다. 그래야 자신이 수 없이 외친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