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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폭(建暴)'이라는 단어가 연일 화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건설 현장 노조의 불법 행위 실태를 보고받자마자 한 말이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전하면서 해당 단어를 그대로 언론에 공개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인식이 엄중하다는 뜻으로 이를 공개했을터다. 일단 건폭의 단어 생성 과정은 흔히 회자되는 '조폭(組暴, 조직폭력배)'이나 '주폭(酒暴, 음주폭력자)'을 본딴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대통령실은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기득권 노조의 불법행위를 방치할 경우 그 피해가 서민들에게 전가되는 심각성을 단번에 인식할 수 있게 만든 조어"라고 설명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 특유의 캐릭터가 녹아든 것으로 해석된다. 즉 사회 부조리 현상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규정하고, 이를 척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차원으로 읽힌다. 노동개혁의 대통령 의지가 대통령실 설명처럼 매우 강하다는 내용이다.
국무회의 전날에도 윤 대통령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상납금을 받은 내용을 두고 "(적폐 청산을)조금 하다가 마는 게 아니라 임기 말까지 뿌리 뽑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회적 부조리가 이른바 관행의 형태로 우리 사회에 뿌리 내렸다면 이를 청산하는 작업은 굉장히 어렵다. 그만큼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한 게 사실이다. 물론 개혁의 성과는 개혁을 시작했을 때의 명분을 유지한채 끝까지 진행돼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사실 윤 대통령은 2021년 3월 검찰총장 재직시절에도 이와 같은 신조어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반대하면서 '부패완판(부패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을 내세웠다. 매진 사례와 같은 '완판' 단어를 조합했다. 찬반으로 나뉘는 대형 사회적 이슈의 경우 프레임 대결이 때로는 주장의 유효한 수단이 된다. 그런 점에서 검수완박의 맞대응 성격인 부패완판은 꽤나 적절한 프레임 형성에 기여했다.
문제는 검찰총장과 대통령의 자리는 다르다는 점이다. 검찰총장의 경우 다양한 범죄를 수사와 기소로 단죄하는 사정기관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반면 대통령은 우리 사회 전체의 이슈들을 소통과 협의 때로는 양보와 합의를 거쳐 조율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다. 이분법적 프레임이 개혁에 있어서는 통할 수 있더라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풀기에는 다소 부적절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풀기 어려운 과제가 바로 남북관계다. 대통령실 설명이나 정치권 해석처럼 검사 출신 특유의 대통령 캐릭터가 절대로 적용되서는 안되는 이슈가 바로 북핵이다. 국제관계 즉 외교의 경우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여러 국가가 각기 다른 입장에서 접근한다. 즉 이분법으로 딱 잘라 피아구분을 하고 접근해서는 절대 해법을 도출해 내기 어렵다. 때문에 윤 대통령이 해외 일정을 소화할 때마다 구설수에 올랐는데, 이는 그러한 특유의 검사 캐릭터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이 도발하면 전략자산 전개의 한미연합 훈련으로 대응하고 더 심각한 도발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즉각 취하겠다는 게 현 정부 기조다. 자칫 전쟁까지 불사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힐 법 하다. 위험천만한 접근방식이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입장을 잘 파악한 뒤 인내를 갖고 대화로 접근해야 한다. 검찰총장 캐릭터는 외교에는 적절치 못하다.
노동개혁을 구사하는 대통령을 응원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검찰총장이 아니다. 국내외 각종 현안과 이슈에 따라 유효 적절한 접근방식으로 해법을 찾아가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