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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가 당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진행 중이다. 투표율만 해도 과거 여느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보다 높다. 이대로라면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투표율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투표율은 단순히 보아 넘겨야 할 사안이 아니다. 당원 선거인단이 총 83만 7236명인데 그 연령대별 구성을 들여봐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이준석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국민의힘 당원들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무엇보다 청년당원이 급증했다. 이들의 적극적인 투표권 행사가 높은 투표율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보수성향의 젊은층들이 당원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당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이 젊어졌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오랜시간 고착됐던 지역연고 중심의 당 운영에 큰 변화가 예상되어서다.
실제 기자가 과거 한나라당을 출입하던 시절만 해도 지연과 학연을 뼈대로 주변의 인사들이 당 운영과 당 대표 선출, 심지어 공천까지 좌지우지했다. 당사든 의원실이든 국회의원 지역 사무실이든 상관없이 "형님(성님) 우리가 남입니까. 한번 봐주이소"라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자주 들렸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높은 투표율이 단적인 증거다. 물론 당 대표 선거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이제 당 대표 후보든 당 소속 국회의원이든 모두 높은 투표율이 갖는 의미를 심각하게 곱씹어야 한다. 더 이상 형님이 통하던 시대는 아니라는 얘기다. 젊은 보수 젊은 진보 성향의 신인 또는 중고신인 정치인들의 약진이 이뤄질 기반은 마련되어 가고 있고, 그들의 적극적 투표권 행사가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어서다.
외교부를 출입하던 시절이었다. 오랫동안 외교가에 몸담았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외교활동을 하기에 편하기로는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 또는 후진국이 더 편하다는 것이다. 의아했다. 왜 그런가 답을 들으니 명쾌해졌다. 외교관의 주된 임무 중 하나가 해당 국가에 한국의 고위층이 방문할 경우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즉 급이 맞는 인사를 섭외를 해야 하는데 선진국일 수록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선진국의 투명한 시스템 하에서는 갑작스런 고위층 방문에 맞출 스케쥴을 짜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차라리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은 쉽게 말해 뒷돈을 얼마 쥐어주면서 인맥을 잘 활용하면 그러한 일정을 무리없이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고인물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고인물이 아닌 흐르는 물이 될 때 정치는 비로소 우리 국격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건강한 입법은 물론이고 건강한 정쟁으로 협치를 도모할 경우 정치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질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청렴도는 63점으로 180개국 가운데 31위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 순위이기는 하나 정부의 목표 순위인 20위권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의 오랜 부패지수 개선 노력에도 순위 상승이 더딘데 대해서는 정치권와 공직사회의 부패가 원인이라는데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많지 않다.
새 당 대표가 선출될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협치다. 협치의 방법을 달리하길 바란다. 내가 양보한다는 개념을 우선시 하는게 아니라 저들의 생각과 입장은 무엇인지 들어봐야 한다는 개념을 우선했으면 한다. 피아구분은 하되 풀기 어려운 난제들을 묘수로서 풀어가는 정치력이 발휘되는 정치권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