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기대 속 은행권 주담대 한달 새 '3조' 늘어
취약차주는 대부업체마저 퇴짜...'대출 양극화' 심화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길고 길었던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연내 종료될 거라는 기대감 속에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있지만, 대출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대출금리가 하락하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늘어나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 부활하는 조짐이지만,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저신용자들은 더욱 높아진 대출문턱 앞에서 급전도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803조6000억원으로 전월보다 2조8000억원이 증가했다. 3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증가한 것이다. 증가폭도 3월(2조3000억원)보다 커졌다.
주택 거래가 소폭 늘어나는 추세 속에 대출금리가 하락하면서 주담대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집단대출로 인한 자연증가분에 더해 주택가격 상승과 대출관련 규제 완화에 주담대 수요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리인상 기조가 정점에 달했다는 기대심리도 대출 증가에 작용했다. 올해 초 8%대를 돌파했던 주담대 금리 상단은 최근 5%대로 떨어졌다. 금리 하단은 3%대까지 내려왔다.
금리가 낮아진 만큼 대출 상환의 필요성이 낮아진 측면도 있다. 대출잔액이 늘어났다는 것은 기존 대출 상환보다 신규 대출이 더 많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분간 대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대출금리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담대뿐만 아니라 전체 가계대출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영끌은 엄두도 못내는 저신용자들의 대출창구는 꽉 막혀가고 있다.
이들에겐 저축은행과 대부업 등이 유일한 보루인데 수익성과 건전성 악화를 우려한 비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높일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대출문이 좁아질 경우 저신용자를 중심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가계도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204개 금융기관 여신총괄 책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지난달 26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비은행권의 경우 2분기 대출태도 지수는 저축은행 -33, 신용카드 -7, 상호금융 -22, 생명보험 -20 등으로 나타나 대출 조이기가 예상되고 있다. 지수(100~-100)가 마이너스(-)를 보이면 대출태도를 강화하겠다고 답한 금융기관이 더 많다는 의미이고 플러스(+)면 그 반대이다.
한편 지난해 제도권 서민금융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체에서 대출이 거절돼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린 저신용자가 7만명을 넘어선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서민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저신용자 및 대부업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 따르면 지난해 신용평점 하위 10%(NICE 기준)에 해당하는 저신용자 중 불법사금융으로 신규 유입된 차주는 3만9000~7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3만7000~5만6000명)보다 하단이 2000명, 상단이 1만5000명 늘었다.
차주 수뿐만 아니라 불법사금융 이용액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불법사금융 이용액은 6800억~1조2300억원으로 전년보다 400억~5900억원 증가했다. 불법사금융 유입이 증가한 건 저신용자들이 대부업 등 제 3금융권에서조차 대출을 받기 어려워져서다.
한국은행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 비용이 커진 대부업체들은 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내주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판단해 아예 신규 대출 취급을 중단하거나 대출 공급규모도 대폭 줄여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68%로 지난해(63.4%)와 비교해 4.6%포인트 증가했다.
문제는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린 저신용자들이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또다른 사채를 빌려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10명 중 8명은 불법사금융임을 인지하고도 돈을 빌렸고 4명꼴로 높은 이자를 감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약 40%는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으며 연 240% 이상의 금리를 지급하는 비중도 33% 수준이었다.
서민금융연구원 측은 "금리 자체에 얽매이기보다 가능한 많은 사람의 금융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시장연동형 최고금리 도입 등 금융환경 변화를 고려한 유연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