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근혜는 태극기, 조국은 조극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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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박근혜는 태극기, 조국은 조극기를 남겼다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9.10.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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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조국 사태는 무엇을 남겼나. 조국 사태로 인한 충격이 큰 까닭에 조국 씨의 법무부 장관직 사퇴 이후 지난 66일 간의 조국 정국을 돌아보는 이들이 많다. 사람들은 우선 진영을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기득권의 부패를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념이나 정파를 초월해 그들만의 이익을 공유하는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조국 딸의 사례에서 보듯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부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을 위한 품앗이와 이익공유가 일상이었다.
검찰개혁이니 입시개혁이니 하는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털어보면 누구나 먼지가 나는, 뿌리부터 썩어있는 현실에서 아무리 제도를 고쳐봐야 피상적인 겉핥기 개혁에 불과할 테니까. 물론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그 무수한 인사 참사 때마다 ‘그 정도 흠결은 넘어가자’는 게 다름 아닌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이었으니. 심지어 대통령은 비리 의혹 백화점인 장관 후보자에게 “일을 더 잘할 사람” “더 개혁적인 사람”이라고 찬사를 보내지 않았나. 조국 사태는 싹튼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조국 사태가 남긴 보다 큰 후과는 ‘조극기’(조국+태극기) 부대의 탄생이다. 조국 사태 와중에 필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당파 앞에서 보편적 상식마저 부정당하는 현실을 목도했다. 조국 씨 본인마저 “부끄럽다”고 말하는데도 서초동에서 “정경심 사랑해요”라는 군중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건곤감리가 빠진 태극문양을 들고 “조국 수호”를 외치던 사람들은 어쩌면 스스로를 태극기 부대에 빗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행태는 그들이 경멸하던 태극기 부대를 너무나 닮아있다. 조국 씨 사퇴 직후 반응만 봐도 그렇다. 법무부 홈페이지에 조국 씨를 두고 “이 나라의 영웅” “최고의 법무장관”이라며 칭송 글을 올리고,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서는 “똥물 튀길까 두려워 구경만 했다”며 당 지도부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진보 진영은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의 궤멸을 지켜보며 태극기 부대와 결별하지 못하는 보수 진영을 비웃었지만, 어느새 그들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문자폭탄이 두려워서, 경선에서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조국 사태 내내 눈치만 봤다. 제왕적 총재로 군림한 DJ 시절의 민주당에서도 정대철, 김상현, 김근태 등 비주류가 자기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날마다 조국을 옹호하는 궤변을 쏟아냈을 뿐이다. 사람들은 서초동의 조극기 부대가 외면 받던 태극기 부대를 부활시켰다고까지 말한다. 태극기 부대와 조극기 부대가 활개치는 현실. 이야말로 조국이 우리 사회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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