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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승익 기자] 이성과 과학이 실종된 중세 유럽은 제정일치의 교황권력으로 긴 암흑시대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의 성경은 요즘 교회에서 교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이 아니었다. 성경을 범접하지 못했던 유럽인들은 오로지 교황이나 추기경,대주교의 입에만 의존했다.
카피라이터의 출발은 이렇게 중세 유럽 성경 필사에서 시작됐다. 인쇄술 이전 시대엔 필경사들이 책을 만들었다. 필경사들은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쓰고 책 중간 중간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렇기에 일반 대중은 감히 접하기 힘든 비싼 가격에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15세기 독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등장하게 된다. 이로써 성경과 책은 대중에게 보급화되고 급기야 루터의 종교개혁까지 불러왔다. 이는 곧 중세 유럽 교황청 지식권력의 독점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이렇게 철옹성 같았던 교황권력을 무너지게 한 인쇄술 발전의 깊은 내면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의 성적 욕구가 있었다. 말과 그림으로만 전달하던 성적 이미지가 글자로 대량 생산되어 대중에게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인쇄기는 단지 활자로 책만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동판화의 형태로 그림도 인쇄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중세 백성들은 문학작품보다는 그림이 인쇄된 책 보기를 더 좋아했다.
1839년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가 사진 기술을 발명하면서 포르노에도 새로운 혁명이 시작됐다. 사진은 과거 귀족들의 그림을 평민들의 이미지로 바꾸어 놓았다. 심지어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는 사진을 보고서 “오늘부로 그림은 죽었다”라고 선고했다. 특히 예술가들이 그린 모델의 나체는 사진기로 복제되면서 예술에서 포르노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사진엔 그림이나 판화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세밀함이 있었다. 사람의 몸을 구석구석 보여 줌으로써 과거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도 더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당시 일부 사진사들은 사람들의 초상을 찍기도 했으나 가장 잘 팔리는 아이템은 여성의 나체 사진이었다. 이런 사진들은 곧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과거 그림의 시대에는 재능 있는 예술가만이 여성의 몸을 그리고, 귀족들만이 그 그림을 향유했다면 사진기의 발명은 누구나 사람의 몸을 찍을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시대를 연 것이다. 바로 포르노의 대중화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더구나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사진 속 이미지만 보더라도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IT시대에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포르노 사진과 동영상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VR(가상현실)로도 해외 포르노 배우의 성적 행위를 눈앞에서 보는 것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성적 욕구는 역설적이게도 과학의 발전을 불러왔다.
포르노그래피를 대량으로 인쇄했다고 해서 인쇄기술을 탓할 수 없으며 사진으로 나체를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해서 사진술의 발달을 탓할 수 없다. 5G시대에 야한 동영상이 더 리얼하게 보급된다고 해서 인터넷 기술을 탓할 수 없다. 여러분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포르노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예로 들다보니 자칫 포르노 업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들릴 우려가 있어 또 다른 예를 더 들어보자. 자동차에 사람이 치어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고 하여 법으로 자동차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모든 이들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혀를 내두를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달은 항상 순기능과 역기능을 같이 불러왔다. 그러나 순기능이 역기능을 초월해 이익의 총량이 크다면 인류의 역사는 항상 과학의 발전을 선택했다. 항상 편리함과 즐거움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은 타다의 이재웅 대표를 기소했다. 훗날 우리는 지금의 모습을 보고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기억할 것이다.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우리는 오늘 또 하나의 합리적인 편리함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규제는 하루라도 빨리 뿌리 뽑혀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국가가 나서서 형벌로 다스리는 넌센스만이라도 안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