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한국경제가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10대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 추세는 경기 침체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올해를 최저점으로 국내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극적인 반전보다 점진적 개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경기 침체에도, 민생보다 당쟁에 의한 정치적 공방에 힘쓰는 모양새다. 20대 국회가 본연의 일에 치중했다면 국민과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 침체가 지금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국회 의안정보를 살펴보면, 국회의원들이 지난 4년 가까이 얼마나 일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2016년부터 20대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은 무려 1만6000여개에 이른다. 이중 일부는 이전 국회에서 반복해서 넘어온 것들도 있다.
국회는 당장 필요한 의안들만 일부 합의를 통해 통과시켰을 뿐, 1만6000여개의 법안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경제와 관련된 법안도 다수 포함됐다. 또한 노동조합 등 경제 관련 안건들도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계류 중이다.
국회의 관심은 드루킹이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 등 당색과 관련된 이슈에만 몰려 있다. 국회의원의 본업은 입법이다. 즉, 발의된 법안을 심사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국회는 본업보다 당색에 치우쳐 정치싸움이 주력하고 있다.
올해 산업계에서 유독 이슈가 됐던 사안으로 노사 갈등 문제가 있다. 이러한 노조 관련 발의 법안만 해도 현재 국회에 40여개가 계류돼 있다. 국내 산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권에서 노동계의 목소리는 유난히 크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산업계 전반에 걸쳐 노사갈등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심지어 본사가 프랑스와 미국에 있는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은 본사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파업 등 노사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르노삼성은 물량 배정이 힘들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무시하다 실제 생산 절벽을 맞을 위기에 처했고, 한국지엠도 GM 본사가 미국 내 공장 5곳을 폐쇄하는 와중에도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내년 생산할 신차 배정과 함께 기존 트랙스 생산 물량도 올해 대비 80% 수준을 지켜내는 등 구조조정 태풍에서 선방했지만, 노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트랙스의 경우 본사에서 멕시코로 생산기지를 옮기려 했지만, 효율성 등 이점을 강조해 물량 지키기에 성공한 사례다. 이런 와중에도 노조는 카허카젬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갈등 문제를 제3자가 판단할 순 없지만, 국회에 계류된 법안들이 통과됐더라면 갈등의 폭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법안 계류 문제는 비단 노동계 문제뿐만이 아니다. 정부에서 제4차 산업 혁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막상 관련법안은 국회에 잠들어 있다. 타다 등 공유경제 논란과 관련한 법안이나 AI나 빅데이터 활용과 관련된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법안 등 수많은 법안이 심사대 위에 올라서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일하는 모습을 보이며 좀 더 경제와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처럼 노사갈등이 논란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일자리 문제를 놓고 업계 간 대립이 격화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의 주된 업무는 단순히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법안 발의 수를 놓고 열심히 일한 일꾼으로 자신의 업적을 치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0개의 법안을 발의하는 것보다 국민과 기업을 위한 단 하나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모습이다.
내년 4월에 21대 총선이 이뤄지니 반년 정도의 임기가 남았다. 이 기간 동안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총선을 위한 지지율 확보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이렇게 1만6000여건의 법안이 20대 국회와 함께 사라지게 되면, 21대 국회의원들은 또다시 일을 하는 시늉을 하며 열심히 기존의 법안을 발의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는 입법에 있고, 침체된 경제와 부진한 산업계를 개선할 수 있는 법안들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국회에 있는 분들은 부디 남은 기간 일을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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