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김혜나 기자 | 정부가 범부처적인 뿌리산업 지원에 나섰지만, 낙관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KPIC)에 따르면, 뿌리산업은 자동차·조선·정보통신(IT) 등 국가기간산업인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초산업을 일컫는다. 나무의 뿌리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최종 제품에 내재돼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을 형성한다는 의미로 명명됐다.
뿌리산업의 종류로는 주조, 금형 등 제조업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기반 공정기술과 사출·프레스, 정밀가공, 로봇, 센서 등이 있다. 기존 국내 주력산업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로봇·에너지·환경 등 미래 신산업의 기술력을 뒷받침하는 기반산업이다.
뿌리산업은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공급망의 역할을 한다. 이에 실적은 수출 기업의 업황에 따라 좌우되고, 납품일을 맞추기 위해 초과 근무가 잦다. 이에 지난해 말 일몰된 추가연장근로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며 애로사항을 호소한 바 있다.
KPIC의 ‘2022년 뿌리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뿌리산업 사업체 수는 5만1338곳, 종사자수는 71만9559명이었다. 연령대별로는 40대(32.0%)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50대, 30대 순이었다. 20대 이하는 7만5662명으로 10.5%에 그쳤다. 50대 이상 인력이 24.8%(12만5165명)로 청년보다 2.4배 많다.
고령화와 전문인력 부족은 뿌리산업의 국가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노하우 축적을 통한 숙련기술자 육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산업인 만큼, 청년 기술자 품귀 현상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연간 평균 이직률 역시 약 5만7000명으로 8% 가량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주로 생산에 종사하는 노무직(13.2%)과 기능직(10.1%)의 이직률이 높다. 뿌리산업계의 고질적인 인력 수급 문제가 갈수록 악화하는 이유다.
근무 환경과 급여 역시 젊은 층 진입의 걸림돌이다. 뿌리산업 기업의 평균 급여는 월 290만원으로 4년 전(257만원) 대비 12.8% 증가했다. 다만 업무 강도와 노동 환경 등으로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수출실적 악화와 더불어 세계 각국의 자국 산업 보호조치 역시 제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8일 이창양 산업부 장관 주재로 뿌리업계 간담회를 갖고 ‘K-뿌리산업 첨단화 전략’을 발표했다. K-뿌리산업 첨단화 전략은 뿌리기술 범위를 14개 기술로 확장한 이후 처음 수립한 뿌리산업 정책이다. 뿌리산업을 첨단산업으로 전환하고 지속 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우선 민간투자 주도로 뿌리산업 혁신성장을 가속화한다. 뿌리-수요 동반투자 펀드를 새롭게 조성하고 동반투자 세액공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법·제도, 인력, 자금 등 뿌리기업 투자애로에 대해선 범부처 정책과 지원사업 정보를 제공하는 ‘뿌리 신산업 지원 TF’를 구축·운영한다.
공통핵심 뿌리기술 개발을 위해 총 4000억원 이상의 신규 R&D도 추진한다. 전문인력 양성기관 구축 사업, 뿌리특화단지와 지역혁신기관을 연계한 뿌리혁신클러스터 지원사업 신설, 뿌리기업의 성장단계별 지원제도 마련 등도 추진한다.
이렇듯 뿌리산업에 대한 범부처적인 지원이 이뤄질 계획이지만 세액 등 금전적 지원이 대부분이다. 물론 전체 사업체 중 기술개발 추진 시 애로사항을 자금 부족으로 대답한 기업이 31.4%에 달한 만큼 자금 지원 역시 꼭 필요한 정책으로 꼽힌다. 다만 뿌리산업은 상대적으로 기술을 요하는 부분이 많다. 이에 업계는 숙련공 육성 등에 보다 과감한 지원과 투자가 필요한 만큼 이번 정책을 낙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뿌리산업의 인력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문제지만,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으며 특히 젊은 층의 비중은 점점 줄어만 가는 상태”라며 “겨우 청년층을 고용하더라도 업무 환경과 급여 문제 등으로 인해 장기근속자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우선 젊은 층의 유입을 도울 수 있는 정책적인 지원과, 전문 인력 양성 지원이 없다면 뿌리산업의 근간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