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모델하우스와 차이가 가장 큰 아파트, 바로 삼성 래미안입니다> 한 안티 삼성사이트의 초기화면 문구다. <SK텔레콤을 쓴다는 것, 그리 탐탁치 않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후회하기 전에 쓰던 번호 그대로 쓰세요!> 이 역시 안티 SK텔레콤의 선전 문구다. 안티 사이트란 게시판이나 자료실 등을 토대로 자신들이 반대하는 기업이나 개인의 잘못된 점을 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단체다. 지난 2000년부터 각종 안티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몇몇 기업들은 안티사이트를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관리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기업들의 안티사이트가 사라졌다. 구글을 비롯해 네이버, 엠파스, 다음 등의 검색으로 확인이 가능한 기업관련 안티사이트는 열 손가락에 꼽히는 정도다. 그 가운데서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사이트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대신 인터넷 까페, 혹은 블로그 등을 통해 소규모로 활동하는 안티집단이 남아 있을 뿐이다. 건전한 소비운동을 지향하고자 일어났던 안티기업사이트가 과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사라졌을까.현재 인터넷에서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 안티사이트 ‘안티 래미안’ 운영자 이모씨는 “사이트 운영자로서 직접적인 압력을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조그만 빌미거리라도 있다면 삼성 측에서 어떤 반응을 해오리라 판단하고, 나름대로 대응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또 “삼성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말하고 다니거나, 삼성 관련 불만 시위 등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지인, 친인척 등을 통해 은근한 압력을 행사해 오는 방식을 자주 쓴다” 고 덧붙였다.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고 있지는 않지만 안티사이트를 없애기 위한 물밑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안티사이트 ‘자동차소비자세상’ 운영자 이모씨는 현대자동차측의 끈질긴 협박에 2003년말 6개월 동안 모든 대외활동을 중단하고 ‘잠수’를 탄 적도 있다. 이씨는 2001년 8월경 구입한 ‘에쿠스’의 잦은 고장에 수리센터와 대리점을 찾아가 몇 번이나 얘기를 했지만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안티에쿠스’ 사이트를 만들어 부당함을 알렸다. 그러나 이후 현대자동차 측의 노골적 협박이 이어졌다. 이씨는 “현대차 측에서 온.오프라인을 동원해 전방위적 협박을 해왔다” 며 “사이트 게시판에 ‘몸 조심해라’” 등의 글을 남기고 “자동차회사 직원이 아내를 불러내 ‘초등학생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찾아가겠다’라고 위협, "이정주씨가 잘못되라고 기도하겠다”는 등의 폭언을 했다“ 고 밝혔다. 기업은 안티사이트를 건전한 소비자운동의 한 형태로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골칫거리로만 생각한다. 때문에 적당히 어르거나, 전방위적인 위협을 가해 어떻게든 안티사이트를 없애고자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안티사이트 개설 자체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 기업의 가장 큰 대응법이다. 안티사이트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해당 기업의 도메인 독점이다. 웹브라우저 주소창에 ‘안티삼성전자’를 입력해보자. “‘안티삼성전자’는 등록자가 연결 URL/IP를 미지정”이라고 나온다. ‘안티삼성화재’를 치면 어이없게도 바로 ‘삼성화재’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그룹은 '안티삼성'과 '안티삼성생명', '안티삼성(전자)서비스', '안티삼성카드', '안티삼성화재' 등 안티 그룹들이 사용할 수 있는 한글키워드 도메인 10여 개를 모두 사들였다. ‘antisamsung.com’을 비롯해 ‘antisamsung.net’ ‘antisamsung.org’ ‘antisamsung.name’ 등 대표적인 영문 안티 사이트를 주소창에 치면 이들 도메인의 등록자 역시 삼성 계열사인 삼성네트웍스로 돼 있다. 신세계도 '안티이마트' 도메인을 확보해 놓았다. SK그룹은 '안티SK', '안티에스케이', '안티엔크린' 등을, LG그룹은 LG그룹은 ‘안티엘지.kr’ ‘안티엘지카드.kr’ ‘안티엘지전자.kr’ 등 한글로 된 안티 사이트를 확보했으며 ‘안티구본무.kr’와 같은 오너 반대 사이트도 관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직원 명의로 ‘안티 정몽구.kr’ ‘안티 정주영.kr’ ‘안티 현대.kr’ ‘안티 현대차.kr’ 등의 한글 주소를 선점했다. GS그룹도 공식출범 한달여만에 '안티GS', '안티GS칼텍스'를 발빠르게 선점했다. 기업들이 안티관련 도메인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현대자동차의 '트라제 사건‘ 이후였다. 당시 LPG를 장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수개월을 기다려 트라제를 구입했던 운영자 윤희성씨는 차가 계속 고장이 나서 대책을 요구했지만 회사측의 무성의한 반응에 ’안티트라제‘ 사이트를 개설했다. 네티즌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문제가 불거지자 현대차 측은 구입자들에게 일일이 사과 편지를 발송하고 리콜을 실시했다. '트라제 사건'을 지켜본 삼성 등 다른 대기업들도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안티' 관련 도메인을 싹쓸이 한 것이다. 한편 보상을 해줄테니 안티사이트를 폐쇄하라는 이면협상도 빈번하다. 과거 안티사이트를 운영했던 한 관계자는 “활발하게 운영되던 안티사이트 운영자들은 한번쯤은 해당기업의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 고 밝혔다. 이런 기업과의 이면협상 역시 안티사이트가 사라지는 큰 이유로 꼽힌다. 물론 피해자들의 구제와 보상이 안티사이트가 운영되는 중요 목표이기 때문에 기업이 협상에 나서는 행위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은 한결같이 “제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소비자가 항의하니 ‘케어’의 측면에서 보상해준다” 는 식이다. 이러니 안티사이트 등을 통해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는 소비자에게는 똑같은 문제가 있더라도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상을 받았든 협박을 받았든 안티사이트의 천국으로 불리던 2000년 이후 약 5년 여 만에 안티기업사이트는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현재는 인터넷 까페나 개인 블로그 등으로 옮겨와 그 명맥만 유지하며 활동 역시 기업에 대한 항의나 비판 보다는 단순 정보교환 등을 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업이 안티사이트에 위협을 가하거나 당근을 주는 방식으로 단기적인 효과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상품을 제대로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형태의 안티는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업 입장에서 안티사이트는 전혀 득이 될게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안티사이트 소리에 귀 기울여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당근과 채찍을 오가는 안일한 대응만을 계속한다면 언제고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안티사이트들이 또다시 기지개를 켤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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