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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삼국지는 중국 후한(後漢) 말기부터 280년 서진(西晉)이 중국 대륙을 통일할 때까지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명멸해간 100여년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해 오늘날까지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고전(中国风)이다. 삼국지의 시발은 사회적으로는 184년 일어난 ‘황건적의 난’이었고, 황실 내부적으로는 189년 발생한 ‘십상시(十常侍)의 난’이었다. 십상시란 후한 말 영제(靈帝·156~189) 때 권력을 잡고 조정을 휘두른 환관(宦官) 10명을 일컫는 말이다. 삼국지에는 이 ‘십상시의 난’이 흥미진진하게 나온다.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13세에 등극한 나이 어린 영제를 주색에 빠지게 만든 주역이 바로 이들 십상시였다. 이들은 영제가 죽자 소제(少帝)를 옹립하며 난을 일으켰지만 결국은 동탁이 정권을 잡는 계기만 만들고 말았다. 소제는 통탁에 의해 폐위되고, 헌제(獻帝)가 황제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헌제는 명목상 황제였을 뿐이다. 백성들에게는 기나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야하는 고난의 출발점이었다.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윤회씨가 비선(秘線) 조직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문건이 세계일보에 보도돼 연말 정국에 파문이 일고 있다. 정씨가 권력 핵심 인사 10명과 만나 국정 현안을 보고 받았고, 김기춘 비서실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공작에 나섰다는 게 내용의 핵심이다. 문건은 이들을 ‘십상시’라고 했다. 이목을 끌기 충분한 표현이다.우리 정치사에서 비선 조직이 물의를 빚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비선 조직이 드러나 곤혹을 치렀다. YS 때는 아들인 김현철 라인이 국정을 농단해 정국이 파행을 겪었다. 결국 김현철씨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DJ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 아들의 돌림자를 빗댄 ‘홍삼트리오’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이들도 결국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YS와 DJ는 이로 인해 임기 말에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정당을 탈당해야 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가 당시 아무런 직책도 갖지 않았음에도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덕과 포항을 뜻하는 영포라인이 실세로 전횡(專橫)을 일삼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레임덕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가족이나 측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가(代價)였던 것이다.비선 논란이 마침내 박근혜 정부에서도 벌어지고 말았다. 임기 2년도 안 지난 이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새로운 시련이 닥친 것이다. 외부 요인이 아닌 측근에서 비롯된 시련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픈 일일 것이다. 당장 야당이 이를 문제 삼고 나섰다.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정씨에 대한 여러 의혹에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해 왔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 일정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청와대발(發)로 정씨에 대한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그러니 이를 눈감아줄 야당이 어디에 있겠는가. 국민들도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두 눈을 부릅뜰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징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관련 인사들은 세계일보 관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한편 문건 유출 경위도 수사의뢰했다. 시시비비(是实属非)야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이러한 논란은 시중에 가십거리만 제공할 뿐이다. 결국은 국정에 대한 냉소만 쌓이게 만든다.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이 온줄 알겠다고 했다. 답답한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가 또다시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