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지하철 타고 유랑..정부보조금으로 연명
[매일일보= 성승제기자] 평일 오전 10시경이면 지하철 종로3가역 주변에는 할아버지들로 북적된다. 이들은 대부분 특별한 직업이 있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나오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자식이나 며느리의 눈치를 피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기자는 종로3가 지하철에서 내린 한 할아버지를 좇아가봤다. 할아버지는 곧장 무료 급식소로 향했다.
무료 점심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김정남(가명, 72세) 할아버지가 향한 곳은 탑골공원. 노인들의 아지트(?)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김 할아버지는 비슷한 처지의 할아버지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장기 등의 오락을 즐기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귀띔했다.
할아버지들 중에는 의외로 일을 하고 싶지만 나이 제한으로 일을 할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일할 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노인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지만 고령화 사회를 맞는 우리사회의 대책은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전문>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김정남(가명 72)할아버지는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외출 준비를 한다.
김 할아버지가 자주 가는 곳은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종로 3가역이나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천안역. 그는 지난 5년 동안 거의 빠짐없이 이곳을 찾는다.
할아버지의 하루 일과는 그저 무료 지하철을 타고 의정부에서 천안까지 가서 한 끼에 2천원 하는 점심을 먹거나 돈이 없는 날에는 인근 복지회관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한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다른 할아버지들이 두는 장기를 구경하거나 같은 처지의 벗을 만나 담소를 나눈다. 그것도 아니면 근처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한다.
기자가 슬하에 자녀가 몇 명이냐고 묻자 김 할아버지는 “아들 3명에 딸 1명이고 모두 대학교까지 졸업시켰다”면서 “특히 첫 째는 일류대를 졸업, 한국과학연구원 박사 취득까지 마치고 3년 동안 일본에 살다가 한국에 온지 이제 7개월 됐다”고 자식자랑을 늘어놓았다.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느냐는 질문에 “두어 달에 한두 번 찾아와 용돈 주고 가는 게 고작”이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용돈은 풍족하게 주느냐는 질문에 “자식 돈 받는 게 부담 되서 모자라도 더 달라는 소리는 못하고 대신 그동안 자신이 일하면서 얼마간 모은 돈과 정부에서 3개월에 3만7천원 나오는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 달 용돈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내색 않고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김 할아버지는 “큰 아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 않아서 마음은 든든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김 할아버지는 기자와 얘기 도중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벌써 4시가 다 됐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야”라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경기도 인천에 살고 있는 박진수(가명, 64)할아버지도 김 할아버지 하루일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목수일을 하셨다는 박 할아버지는 지금도 충분히 일 할 수 있는 체력이 있고 특히 젊은 사람보다 노하우가 있어 오히려 꼼꼼하게 더 잘할 수 있지만 업체에서는 나이를 문제 삼아 받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박 할아버지는 하루 일상의 반을 지하철이나 탑골공원에서 보내고 있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는 박 할아버지는 현재 둘째 아들집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둘째 아들집에서 생활하는 게 어떠세요? 라는 질문에 “가끔 피곤하고 귀찮고 해서 하루종일 집에서 쉴라고 하면 은근슬쩍 며느리가 눈치를 주긴 하지만 그래도 아침, 저녁을 챙겨주고 빨래도 다 해주니까 좋아” 라고 말했다.
다시 생활비는 풍족하세요? 라고 묻자 “아이고 어디 풍족하기야 하겠나. 그렇지만 나이 먹고 써봐야 얼마나 쓰겠어? 무료 지하철 타고 다니고 점심때는 노인회관에서 무료 급식 주니까 특별히 돈 나갈 곳이 없어. 단지 가끔 소주 1천500원에 2천원짜리 안주 하나 사놓고 먹을 때가 있지만 이것도 매일 먹는 게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하기 때문에 돈 걱정은 없어. 그런데 가끔 놀러오는 손자 손주 녀석한테 풍족하게 용돈을 못줄 때가 있어서 그게 좀 아쉽기는 하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들 노인들이 집이나 경로당을 마다하고 2-3시간씩이나 걸리는 종로3가 탑골공원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같은 기자의 궁금증에 대해 종로3가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경로당은 주로 할머니들이 모여 주전부리하는 곳”이라며 “할아버지들은 답답하고 방안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많고 간혹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 소주한잔 걸칠 수 있기 때문에 탑골공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사이버대학교 노인복지학과 안정신 교수는 “이러한 일들은 정부나 각 자치단체에서 노인들에게 여가생활 시간활용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향후 서울권과 지방권에 사는 노인들의 욕구는 각자 틀리기 때문에 각 취향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교수는 또 “특히 서울권은 시·단체에서 노인여가활용법 대안에 대한 교육 방안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지만 홍보 등의 부족으로 인해 이 내용을 잘 모르는 노인들이 많아 앞으로 이런 부분도 개선해 나가야 할 것 이다"고 전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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