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직 수락 끝내 거절…"전경련 회장 강신호 체제로 다시 간다"
정부와 재벌정책 놓고 공방…예봉 피해가는 전략 선택
노 대통령 "강 회장에 대해 존경심" 말에 회장단 마음 움직여
재계통합 최우선 과제속 경제살리기 정부와 협조가 우선
난항을 거듭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결국 강신호 현 회장의 연임으로 마무리 됐다.
전경련은 지난 2월23일 전경련회관에서 제44회 정기총회를 열고 제30대 회장에 강 회장을 만장일치로 다시 추대했다. 이로써 강 회장은 앞으로 2년 더 전경련을 이끌게 됐다.
강 회장은 이를 위해 회원사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주문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적극 호응할 뜻을 밝히면서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가치관을 수호한다는 일관된 원칙하에 전경련은 물론 민간경제계가 정부정책에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
또 이날 총회에는 해마다 총회에 참석해온 경제부총리 등 정부측 고위 인사가 참석하지 않아 그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강 회장은 지난 2003년 10월 손길승 회장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중도하차하는 위기상황에서 회장단 내 최고 연장자로서 회장대행을 맡은 뒤 지난해 2월 29대 회장에 정식 선출됐다.
강 회장은 그동안 손 회장의 잔여임기인 1년간 비교적 원만하게 전경련을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이번 강 회장의 전경련 회장 재추대 과정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현직 회장인 강 회장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두차례나 직접 찾아가 전경련 회장직 수락을 간청했으나 끝내 거절당하는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 맡기를 꺼리는 상황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경련의 위상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강 회장은 전경련의 위상 제고를 위해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적임자라고 보고 그를 추대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재계는 이와 관련해 강 회장이 기업 규모가 크고, 오너 출신이며, 상대적으로 연장자인데다가 재계 평판이 좋은 인물로는 이 회장 만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이 주류를 이뤘다.
강 회장의 이러한 뜻은 이 회장을 두차례나 찾아가 차기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 달라고 간청한 것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강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과 함께 이 회장에게 차기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용산구 한남동 소재 삼성그룹 영빈관 승지원을 처음 방문한 것은 지난 1월20일이었다.
이날 회동에서 강 회장은 이 회장에게 경제가 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의 구심점이 필요한 만큼 차기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삼성과 전경련 양쪽에 모두 충실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라며 오히려 추대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강 회장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전경련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기업의 실세대표가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강 회장이 이 회장 추대에 강한 의지를 보임에 따라 전경련은 2월14일 또다시 승지원으로 이 회장을 방문했다.
전경련 회장단과 고문들은 이 자리에서 "한국 경제를 위해 결단을 내려달라"며 이 회장에게 차기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 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새 회장 후보를 물색해 회장단의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모양새를 갖추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이건희 회장 옹립에 실패한 전경련으로서는 강 회장 연임 외에 별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 회장 추대 카드에 매달리다보니 LG그룹 구본무 회장과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등 이른바 '빅3'의 다른 총수가 맡기 어렵게 된 것도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정부와 일정 수준의 대립을 피하기 힘는 전경련 회장직을 맡을 경우 기업에 미칠 위험성이 너무 커 대표적인 그룹 회장들이 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은 것 또한 신임 회장 선임이 난항을 겪은 주요 원인이라고 재계는 분석했다.
회장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이 역시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역대 회장 중 국무총리를 지낸 유창순 회장이 유일하게 회장단 구성원이 아닌 상황에서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유 회장 역시 전경련 부회장, 고문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했던 점을 감안할 때 완전한 외부인사 영입으로 볼 수 없지 않느냐는 게 전경련의 해석이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관료 출신 중 친기업적 성향을 가진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 회원사의 단합을 유도하고 전경련의 이미지를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으나 회장단내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강 회장이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 등의 현안을 놓고 재계와 정부가 팽팽히 대립할 때 정권 쪽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부각되면서 강 회장 연임으로 급선회했다.
그럼에도 전경련이 강 회장을 재추대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강 회장이 80세를 바라보는 고령이라는 점과 재계의 단합을 위해 대표성 있는 인물이 맡아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사퇴의사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계 원로들이 워낙 강하게 설득하자 2월17일 밤에 결국 회장직을 수락했다. 총회를 불과 엿새 앞두고서 였다.
이와 관련 현명관 상근부회장은 강 회장이 차기회장 제의를 수락하면서 "재계 단합을 위해 노력하고 '재벌 대변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불식해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전경련의 변신을 꾀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재계는 강 회장이 취임 2기를 맞은 만큼 전경련의 이미지 변신 등 자신의 구상을 적극적으로 반영시켜 나가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보이고는 있다.
그 근거로 강 회장이 전경련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면서 "전경련이 앞장서서 새로운 성장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5년 10년 뒤를 내다보는 비전과 과제를 제시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실세 회장 추대에 거듭 실패한 전경련이 과거와 같이 실질적인 재계 구심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세 회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조직 장악력과 전경련 위상 제고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겠지만 이것이 재계 단합과 화합에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강 회장이 매출액 5천억원대의 동아제약 회장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거대기업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재계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회장 추대 과정에서 드러난 재계의 무관심과 분열도 강 회장이 시급히 해소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경련은 삼성 이 회장 등 재계의 얼굴들이 회장을 맡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위상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미묘한 갈등까지 표출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강 회장 말대로 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제단체를 만들기 위해선 회장 선임과정에서 불거진 LG, 현대차그룹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강 회장은 이들 그룹 총수를 직접 찾아가는 한편 재계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서 "강 회장은 지난해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기업인들의 선처를 이끌어내는 등 중요한 역할을 무난해 수행했다"며 "재계에서 이 같은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재계 한 관계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재벌개혁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는 정부와의 관계도 부담스런 숙제다.
전경련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당초 우려와는 달리 정부와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자평하고는 있다.
하지만 최근의 증권집단소송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둘러싼 양측간 갈등에서 보듯 회원사의 입장과 상충되는 참여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에 대해 서로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정부와 재벌정책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며 나름대로 전경련의 변신을 꾀함으로써 예봉을 피해가는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기업집단 규제 철폐를 절박하게 요구하는 일부 그룹들로부터 강 회장이 재계 이해를 대변하는 데 미온적이며 정부 정책에 순응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 회장은 취임사에서 경제계의 단합, 정부 경제정책에의 적극 호응, 투명사회 건설을 위한 부패방지 노력을 앞으로의 전경련 운영방향이라고 밝혔다.
손길승 전 회장이 중도하차한 뒤 비교적 원만하게 전경련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 강 회장이 새 임기 동안 전경련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데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