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3년4개월 만에 심리적 마지노선 1350원 돌파
정부, 자금 유출·원화 약세, 물가 상승 압박에 ‘고심’
[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원/달러 환율이 13년 4개월 만에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350원을 돌파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발언에 따른 영향이다. 당국이 원/달러 환율 급등에 대한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놨지만, 환율 오름세를 저지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금리 역전 상태에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면 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는 것이 분명해 정부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19.1원 오른 달러당 1350.4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이날 11.2원 오른 1342.5원에 개장해 12시 32분 1350.8원까지 고점을 높였다. 환율은 이후 1350원선 아래에서 거래되다가 장 마감 직전 다시 1350선 위로 올라섰다.
이러한 환율 수준은 고가 기준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29일(1357.5원) 이후 약 13년 4개월 만에 최고치였으며, 종가 기준으로도 2009년 4월 28일(1356.80원) 이후 가장 높았다. 환율이 치솟은 것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시장 예상보다도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발언을 하면서, 달러가 강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잭슨홀 미팅)에서 앞으로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당분간 제약적인 (통화)정책 스탠스 유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이 심상치 않자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서울 수출입은행에서 기재부 내 담당 부서와 국제금융센터가 참여하는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시장에서 과도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도 급격하게 떨어질 위험이 있다.
더구나 원화 가치가 낮아질수록 같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은 높아지는 만큼,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물론 단순히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졌다고 자동으로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전 상태에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지면 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금통위도 향후 기준금리 결정 과정에서 이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5일 기준금리 인상 직후 간담회에서 “9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더 크게 역전될 텐데, 그것이 환율 상승 압력이 되고 자본유출을 더 촉진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한·미 금리 격차와 자본유출, 환율 움직임이 기계적으로 관계된 것은 아니고 다른 요인들에도 영향에도 받는다. 과거(역전기)에도 그런 현상이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격차만으로 우려가 실현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과 이후 연말까지 최소 두 차례 빅 스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은 금통위도 올해 두번 남은 10월, 11월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잇달아 올릴 가능성 역시 커졌다. 한은 설립 이래 사상 유례없는 6연속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한 것이다.
다만 금리 인상 폭은 회의마다 0.25%포인트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7월과 같은 빅 스텝이 재연되지는 않더라도, 연말까지 6차례 연속 기준금리가 잇따라 오르면 어느 정도 경기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기준금리 줄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면 이자 부담에 소비마저 위축될 위험이 있다.
작년 8월 이후 기준금리가 2.00%포인트나 뛰면서 이미 가계의 이자 부담은 약 27조5000억원, 대출자 1인당 약 130만원 정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10월, 11월 기준금리가 또 0.25%포인트씩 인상되면 6조8000억원, 1인당 32만원이상 이자가 더 불어나게 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2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좋았지만, 소비만 기대 이상이었을 뿐 수출이 많이 둔화했고, 이후로도 계속 여러 나라의 경기 침체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한은도 금리를 계속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소비, 투자, 수출 중 하나라도 가시적으로 살아났다는 증거가 지금 없다”며 “수출은 세계 경제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늘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공급망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 금리 인상 효과가 소비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경기침체 가능성을 제기했다.